일본·싱가포르 사례에서 배우는 분산적 거버넌스의 필요성
정부와 전문가 단체의 협력으로 의학교육 질적 향상 도모해야
지나친 정부 주도 정책이 의정 갈등의 원인으로 지적돼
우리나라 의학교육 거버넌스가 지나치게 정부 중심적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해외 사례와 비교해볼 때, 정부로부터 위임받은 전문직 단체가 정책 개발과 실행 과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분산적 거버넌스를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충남의대 정성수 교수는 연세의대에서 발간한 ‘의학교육논단’ 최신호에 실린 논문 ‘거버넌스 중심으로 살펴본 일본과 싱가포르 의학교육 정책 비교: 한국에 주는 시사점’을 통해 한국의 의학교육 정책에 대한 개선 방향을 제안했다.
정 교수는 의학교육의 발전이 의사 역량 향상과 환자 안전, 치료 성적과도 직결된다고 강조하며, 이를 위해서는 의대의 노력뿐만 아니라 국가적 차원의 정책과 지원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 이상적인 의학교육 정책은 정부가 이해관계자들과의 협력 및 필요한 자원을 제공하면서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의대 정원 증원 정책 등 주요 정책이 정부 주도로 결정되며, 이해관계자의 참여가 거의 없는 상황이다. 정 교수는 의대의 시설 투자에 대한 지원은 있지만, 정작 의학교육 향상 자체를 위한 정부의 지원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일본과 싱가포르의 사례를 통해 한국 의학교육 거버넌스의 문제점을 진단했다. 일본의 경우, 과거에는 정부 주도로 의학교육 정책을 결정했으나, 현재는 정부와 전문가 단체가 협력적 거버넌스를 이루며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의과대학 핵심 커리큘럼 모델(MCC)’을 정부가 시행하고 의대와의 협력을 통해 발전시켜 왔다. 이후, 의대와 전문가 단체가 함께 개정안을 제시하며 정책 설계 과정에 깊이 관여했다.
반면 싱가포르는 민간 주도로 의학교육 정책이 추진되는 특징을 보였다. 예를 들어, 듀크 앤유에스 의대 설립 시 정부는 ‘Research, Innovation and Enterprise(RIE)’ 프로그램을 통해 재정적 지원을 제공하며 민간의 주도적 혁신을 뒷받침했다. 싱가포르의 경우 주요 의료기관이 정책 결정에 참여하고 정부는 이를 지속적으로 지원하며, 정부 주도보다는 의대가 주도하는 구조였다.
정 교수는 우리나라의 의학교육 정책이 대부분 정부 주도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해관계자의 참여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강조했다. 의대 정원 증원 등 정책도 전문가 단체와 사전 논의 없이 갑작스럽게 발표돼 갈등을 유발했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재정 지원 수준에서도 한국과 일본, 싱가포르는 큰 차이를 보였다. 일본은 지역할당제나 MCC 시행 등을 위해 정부가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으며, 대부분의 의대가 정부 지원을 받고 있다. 싱가포르도 주요 의료정책이 의회의 예산 지원을 받아 시행되며, 의료 자원의 효과적 분배를 위해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적 지원이 이루어진다.
반면 한국은 의대 시설 투자 외에는 의학교육 향상을 위한 재정 지원이 거의 없는 상황이다. 실기시험이나 컴퓨터기반 시험 도입 등 교육 비용이 증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비용을 의대가 스스로 충당하고 있다. 정 교수는 "국립의대조차 재정 지원이 없어 대학병원 전입금이나 동창회 기부금에 의존하고 있다"고 현실을 꼬집었다.
정 교수는 바람직한 의학교육 거버넌스 모형으로 "정부로부터 직무 위임을 받은 전문직 단체가 정부와 파트너십을 유지하면서 정책을 개발하고 실행에도 관여하는 분산적 거버넌스"를 제안했다. 그는 "의정 갈등의 시발점이 된 갑작스러운 의대 정원 증원 문제도 제대로 된 거버넌스가 구축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며, "의대와 의대생, 전공의, 교수 등 이해관계자가 참여할 수 있는 거버넌스를 구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우리나라의 의학교육 관련 정책 거버넌스는 정부 주도에서 벗어나 전문직 단체와 파트너십을 강화해 보다 투명하고 협력적인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정부는 재정적·제도적 지원에 주력하고, 전문직 단체는 정책 개발과 실행을 주도함으로써 의학교육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현재의 의학교육 정책 거버넌스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전문가 단체 간의 협력이 필수적이며, 이를 통해 보다 효과적이고 지속 가능한 의학교육 환경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이 이번 연구를 통해 제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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