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3년 11월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법이 시행된 지 약 1년이 지났지만, 외부로 제공되는 영상정보의 비식별화 범위에 대한 논의가 이제서야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환자의 신체부위 등 민감한 부분을 비식별화하는 방안을 추가하는 법안이 발의되었지만, 의료계는 "추가적인 실익이 없다"며 강하게 반대하고 있으며, 정부 역시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 10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조인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의료법 일부 개정안에 대해 심사를 진행하면서, 정부부처 및 관련 유관단체의 의견을 수렴했다.

해당 개정안은 의료기관 장이 수술 장면을 촬영한 영상정보를 열람하거나 제공할 때 특정 신체 부위를 가리는 등 비식별화 조치를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비식별화 조치의 구체적인 절차 및 범위는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도록 되어 있다.

현재의 법률은 범죄 수사나 법원의 재판 업무 수행을 위해 관계 기관이 요청할 경우, 환자와 의료인 모두의 동의를 받아 수술실 CCTV 영상정보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환자의 신체와 관련된 개인정보 비식별화 조치는 규정하지 않아, 환자의 인격권과 사생활 침해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번 개정안은 이러한 문제를 개선하려는 목적에서 제안되었다.

정부와 관련 기관의 신중한 입장

정부와 관계 기관은 이번 개정안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추가 조치는 불필요하다"며 현행 법규로도 환자의 인격권 보호를 충분히 달성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복지부는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가 수술실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법 행위를 예방하고, 의료 분쟁 시 적절한 해결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하며, 이미 영상정보 열람 및 제공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어 사생활 침해를 방지하는데 충분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법무부와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비식별화 조치에 대한 예외 사유를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며 수정 수용 의견을 냈다. 법무부는 상황에 따라 비식별화되지 않은 원본 영상정보가 필요한 경우가 있을 수 있다고 언급했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역시 의료사고 발생과 같은 긴급 상황에서 비식별화 조치로 인해 영상 열람과 제공이 지연되거나 거부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료계와 환자 단체의 반대 입장

의료계와 병원계는 수술실 CCTV 설치가 이미 의무화된 상황에서 비식별화 조치라는 추가적인 규제에 대해 실익이 부족하다고 보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이 개정안이 수술실 CCTV 설치의 취지를 훼손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강하게 반대했다.

의협은 "영상정보는 환자와 보호자가 민감한 신체부위 촬영을 인지한 상태에서 동의해 생성되며, 법적 권한을 가진 사람에게만 열람과 제공이 가능하다"며 "비식별화 조치를 한다면 그 비용은 영상 제공 요청자가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한병원협회 역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병협은 이미 많은 의료기관이 비식별화 처리 기능이 없는 CCTV 장비를 설치하고 운영 중이기 때문에 추가적인 관련 프로그램과 장비 도입, 관리 인력 배치가 필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비식별화 처리 기술의 수준과 이에 소요되는 비용의 규모를 먼저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환자 단체인 한국환자단체연합회도 개정안에 반대했다. 연합회는 수술실 CCTV 촬영이 환자의 요청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며, 신체 부위에 가까운 촬영이 아닌 벽면을 중심으로 촬영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한 응급 수술의 경우 의료인이 거부하면 촬영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는 사례가 많아 이미 제한적인 상황이라는 지적도 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