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의료진 폭언·폭행 심화, 의료대란의 피해는 그들에게

응급의료 종사자 10명 중 9명 폭언·폭행 경험
젊은 여성 의료진 피해 집중, 예방 대책 시급
법적 처벌 미흡… 응급실 안전망 강화 요구

의대 증원 논란으로 촉발된 의료대란이 장기화되면서, 응급실 의료진이 폭언과 폭행의 표적이 되는 등 고충이 심화되고 있다.


▲ 이해를 돕기위한 이미지. 실제와는 관련이 없습니다.

평소에도 환자와 보호자의 항의로 어려움을 겪던 응급실은 의료대란으로 진료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하면서 의료진들이 고스란히 감정적 폭력의 대상이 되고 있다.

최근 중앙응급의료센터가 응급의료 종사자 37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응급의료 인식 및 인지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급실 의료진 10명 중 9명(88.8%)이 폭언이나 폭행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응급의료 현장의 열악한 실상이 드러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조사에 따르면, 폭언과 폭행 피해는 여성(90.1%)과 30대(93.4%) 의료진에서 가장 빈번하게 발생했다. 특히 중소병원의 응급실과 환자 진료에 직접 관여하는 의사와 간호사(91.4%)가 주요 피해자로 나타났다. 폭언·폭행 사례 중 환자와 간호사 간의 갈등이 51.1%로 가장 많았으며, 환자와 의사 간 충돌도 11.4%에 달했다.


응급실에서 폭언과 폭행이 빈번한 이유는 의료 공백과 대기시간 증가로 환자와 보호자의 불만이 고조되기 때문이다. 특히 젊은 여성 의료진은 폭언과 위협 상황에 더 자주 노출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응급의료 종사자들은 폭언·폭행에 대응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방안으로 ‘응급실 보안 인력 배치 강화’와 ‘대국민 홍보’를 꼽았다. 이 외에도 ‘응급실 CCTV 설치’(10.8%), ‘경찰 간 핫라인 구축’(9.6%), ‘진료환경 안정성 평가 강화’(7.8%) 등 다양한 제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강력한 처벌보다는 사전 예방이 우선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실제로 의료진이 폭행이나 폭언을 당했더라도 환자나 보호자의 사정을 감안해 신고를 취하하는 경우가 70%에 달하며, 실제 처벌로 이어지는 경우는 10%에 불과하다.

2018년 故 임세원 교수 사건 이후 제정된 ‘임세원법’은 의료인을 폭행해 상해를 입히는 경우 최대 7년 이하의 징역형을, 사망에 이르게 하면 무기징역까지 선고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한, 병원 내 보안 인력 배치와 비상경보장치 설치를 의무화했지만, 의료진을 대상으로 한 폭력 사건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도 경기도 용인의 한 응급실에서 의사가 70대 환자가 휘두른 낫에 목을 찔리는 사건이 발생하는 등 의료현장에서의 폭력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한 대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의료진이 진료에 전념해야 할 응급실이 폭언과 폭행의 현장이 되어가고 있다”며 “사명감으로 버텨왔지만, 이제는 자괴감이 들 정도”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저작권자 ⓒ 의사나라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