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혈액학 전문의 10명 중 7명 "미래 암울"…과로·저수가·소송 위험 호소
고령화 심각, 50대 이상 절반 육박…신규 의료진은 기피
혈액암 환자 급증에도 의료인력 부족…"정부, 수가 개선 등 과감한 지원 나서야"
대한혈액학회가 국내 혈액학 분야가 전문의 급감과 열악한 의료환경으로 인해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고 경고하며 정부의 긴급한 지원을 호소했다.
27일 김석진 대한혈액학회 이사장(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은 국제학술대회(ICKSH2025) 기자간담회에서 "지금과 같은 상황이 지속된다면 5년 내 국내 혈액학 분야에 심각한 의료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며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이 같은 긴급 호소는 대한혈액학회가 창립 이후 처음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른 것이다. 혈액학 전문의 14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42.3%(63명)가 혈액학 분야의 미래를 '절망적'으로, 30.9%(46명)가 '부정적'으로 전망했다. 10명 중 7명 이상이 비관적인 전망을 한 것이다.
혈액학 분야 위기의 주요 원인으로는 ▲과도한 근무 시간 ▲낮은 급여 ▲의료소송 리스크 ▲의정 갈등 ▲의료 자율성 침해 등이 꼽혔다. 혈액학 전문의의 46.3%는 주당 근로 시간이 80시간 이상이고, 16.8%는 무려 100시간 이상 근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높은 노동 강도에도 불구하고, 야간 근무 이후 충분한 휴식을 보장받지 못하는 비율이 80.5%에 달했다.
또한, 혈액학 전문의 고령화 문제도 심각하다. 이번 조사에서 혈액내과 전문의의 45%, 소아혈액 전문의의 53%, 병리과 전문의의 49%가 50세 이상이었다. 특히 60세 이상 전문의 비율도 각각 19%, 26%, 13%에 달해 향후 10년 내 대규모 은퇴로 인한 의료 공백이 현실화될 것으로 우려된다.
이미 국내 혈액학 전문의 수는 다른 선진국에 비해 크게 부족한 상황이다. 인구 10만 명당 혈액학 전문의 수가 영국 2.92명, 일본 1.109명, 미국 0.707명인데 비해 한국은 단 0.307명에 그친다. 이마저도 수도권에 집중돼 있어 지역 간 의료 불균형도 심화되고 있다.
더욱 큰 문제는 국내 혈액암 환자 수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어 앞으로 의료 인력 부족이 더욱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이다. 설문조사에 참여한 혈액학 전문의 중 67.1%는 퇴사를 고민한 경험이 있고, 실제 퇴사 경험자도 45.8%나 됐다.
김석진 이사장은 "지금과 같은 상황이 지속된다면 혈액질환 환자들이 치료받을 기회를 잃게 될 것"이라며 "정부가 수가 현실화, 신규 전문의 양성을 위한 적극적 지원 등 과감한 정책적 개입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혜리 혈액학회 홍보이사(서울아산병원 소아청소년종양혈액과 교수)는 "특히 급성 백혈병 환자가 많은 소아혈액종양 분야는 골수이식을 수행할 의료센터와 의료진이 급감하고 있어 시급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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