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권위, 비의료인의 문신 시술행위를 전면 금지하기보다는 시술 요건·범위와 관리·감독 체계를 제도화하는 방향으로 법률을 제정하는 게 바람직해
- 의료계, 문신 시술은 사람의 생명이나 신체, 위생과도 연관돼 있는 만큼, 비의료인에 의한 문신 시술이 합법화될 경우 부작용이나 감염, 응급상황 등이 우려
‘비의료인의 문신시술 합법화’를 두고 의료계와 미용계의 치열한 의견대립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최근 국가인권위원회가 ‘의료인이 아닌 사람도 문신 시술을 할 수 있도록 합법화해야 한다’는 의견을 국회에 제출해 사회적 파장이 예상되고 있다.
인권위(위원장 송두환)는 16일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문신 관련 입법안들에 대한 신속한 처리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국회의장에게 표명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문신 시술자의 직업 선택의 자유는 물론, 문신 시술을 받는 사람이 개성을 발현할 자유 등을 부당하게 침해하지 않으려면 비의료인의 문신 시술행위를 전면 금지하기보다는 시술 요건·범위와 관리·감독 체계를 제도화하는 방향으로 법률을 제정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취지를 밝혔다.
◆ 비의료인에 의한 문신 시술은 불법
'문신(文身)'은 바늘 등을 사용해 인체에 독성이 없는 색소로 피부에 여러가지 모양을 새겨 넣는 행위를 말한다. 현재 문신과 관련해 명확한 법적 근거는 없지만, 법원은 문신 시술행위가 '의료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다. 법 개정이 이뤄지기 전까지 비의료인에 의한 문신 시술은 엄연한 불법이다.
인권위는 이를 두고 “반영구화장을 포함한 문신 시술이 대부분 타투협회 소속 회원이나 미용인 등 비의료인에 의해 이뤄지는 반면, 현행 제도는 비의료인의 문신 시술행위를 ‘무면허 의료행위’로 보고 이를 형사 처벌하고 있어 법제도와 현실 간의 괴리가 큰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문신 시술 자체가 피부에 색소를 주입해 일정한 문양을 남기는 것으로 인체에 대한 위험이 없다고 할 수 없지만, 실질적인 위험의 정도를 고려할 때 반드시 인체와 질병에 대한 고도의 전문 지식과 기술을 갖추고 의사면허를 취득한 사람만이 이를 수행해야 하는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또한 “문신 시술은 통상의 의료행위와는 별개로 시술 방법 자체에 대한 이해와 기술의 숙련도, 문신 염색 물감‧장비의 종류 및 특성과 부작용 등에 대한 별도의 전문성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행위”라며 “따라서 의사면허를 취득했더라도 문신 시술에 대한 전문성이 담보되기는 어렵다”고 봤다.
◆ 해외의 경우는?
현재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는 비의료인의 문신 시술을 합법화하기 위한 법안이 3건 계류돼 있다. 제21대 국회에는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의 ‘문신사법’, 같은당 최종윤 의원의 ‘문신·반영구화장신업 및 이용자보호에 관한 법률안’, 국민의힘 엄태영 의원의 ‘반영구화장문신사법안’을 비롯 총 6건의 문신사법이 발의돼 있다. 하지만 모두 의료계의 반대에 부딪혀 논의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인권위는 미국이나 호주, 유럽 등 주요 국가에서는 문신 시술을 비의료인의 의료행위로 접근하지 않고, 일정한 자격요건을 정하고 엄격한 관리‧감독 등을 통해 문신 시술자의 직업 선택의 자유에 대한 제한을 최소화하면서도 보건위생상의 위험을 방지할 수 있는 적절한 수단을 마련해 놓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우리나라와 유사한 제도를 유지해 왔던 일본의 경우 지난 2020년 9월 최고재판소에서 문신 시술에 대해 ‘의사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의료나 보건지도에 속하는 행위로 보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를 근거로 인권위는 “시술 방식의 위해성이 크지 않고 국가의 관리하에 일정한 교육과 훈련을 통해 효과적으로 보건위생상의 위험을 방지할 수 있는 문신에 대해서까지 비의료인의 시술을 전면 금지하는 것은 문신 시술자의 직업 선택의 자유를 지나치게 침해하는 일이자, 피시술인의 개성 발현의 자유 역시 부당하게 제한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에서도 비의료인 문신 시술자에게 일정한 자격요건을 부여하되, 그에 따른 엄격한 관리‧감독 체계를 규정한 관련 입법안을 조속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 의료계는 강한 반대
반면, 의료계는 비의료인에게 문신 행위를 허용하는 것은 국민의 건강권 보호 의무에 위반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문신 시술은 사람의 생명이나 신체, 위생과도 연관돼 있는 만큼, 비의료인에 의한 문신 시술이 합법화될 경우 부작용이나 감염, 응급상황 등이 우려된다는 이유다.
대한의사협회 ‘(가칭)비의료인의 문신 합법화 법안 대응 TF’ 위원장을 맡고 있는 박명하 서울시의사회장은 “‘문신 시술이 대중화된 만큼 비의료인의 문신 시술을 허용해야 한다’는 인권위 논리는 맞지 않다”고 비판했다.
박 회장은 “문신은 고도의 전문적 지식과 경험이 필요한 분야”라며 “의료계는 비의료인의 문신 시술 시행 시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과 감염, 응급상황 등에 대해 우려하며 법안에 반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미국, 유럽 등 해외에서 문신 시술자에게 직업선택의 자유를 준 만큼, 우리나라에서도 비의료인이 문신 시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절대 용인할 수 없다’는 게 의협의 입장”이라며 “단순히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이와 함께 ‘비의료인의 문신 시술을 무조건 허용하는 게 아니라, 의료계가 우려하는 부분을 법으로 제도화해 규제하겠다’는 정부 입장에 대해서도 박 회장은 “비의료인에 의한 문신 시술을 관리·감독한다는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우려했다. 또한 “지난 15일 TF가 첫 회의을 열고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문신 관련 법안의 내용과 정부의 입장을 파악했다”며 “향후 입법 진행 상황에 따라 의료계의 반대 입장을 전달하고 입법을 저지할 것”이라고 전했다.
◆ 비의료인 시술 시 부작용에도 주의해야
문신시술과 가장 접점이 많은 대한피부과의사회에서도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피부과 전문의들은 비의료인이 시술 부작용에 전혀 대처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문신시술은 각종 부작용을 야기한다. 피부를 통한 감염이 가장 많지만 전염성질환, B형 또는 C형 간염, 매독, 드물게는 에이즈까지 보고됐다.
피부과의사회 정찬우 이사는 “부작용은 시술자의 숙련도, 피술자의 신체적 특성, 보건위생 상태 등 복합적 요인에 의해 발생하는데 비의료인은 환자를 진단할 수도 약을 처방할 수도 없다”며 “의료인이 관여하지 않으면 안 될 객관적 증거가 있고 공청회를 통해 대응하겠다”고 예고했다. (비의료인 시술)규제가 강화된다면 현재 문신수요는 의료계에서 포용 가능한 수준, 문신시장에 뛰어들 의료진은 충분하다고도 덧붙였다.
문신에 사용되는 염료도 문제가 많다. 식약처에 따르면 문신 염료는 중금속을 함유하고 있고 의약외품(마스크·손 소독제·가글제)은커녕 위생용품(면봉·빨대·이쑤시개) 기준에도 미치지 못한다. 즉, 문신용 염료 자체도 불법인 셈이다. 진피층에 주입된 염료는 영구적으로 인체에 남는다. 반영구 시술의 경우 옅게 들어간 염료가 흐려질 뿐, 인체 잔존 문제는 동일하다.
정 이사는 “위생용품에도 도달하지 못한 염료를 주입하는 행위를 일종의 유행으로 일축할 수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피부과의사회는 “비의료인에게 침습적 의료행위인 문신시술을 허용하려면 의료행위 범위를 완전히 재검토해야 하고 대한민국 의료법의 근간을 바꿔야 한다”며 “우리나라 의료법이 의료행위를 명확히 구분하고 있기에 그나마 안전한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한편, 일부 의료계에서는 타투이스트와의 상생 방안을 내놓기도 했다.
이세라 서울시의사회 부회장은 “의료기관에 귀속되어 의사의 지도감독 하에 문신행위가 이뤄져야 한다”며 “문신사 단독법보다 의료기사법으로 제정해야 한다. 이로써 문신시술 관리감독 체계가 의료기관 안으로 들어오게 되고 의료기사 법체계와도 통일성이 유지된다”는 조건부 승인을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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