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약국을 정하지 않은 환자들에게 접근해 편의 차량을 제공한 행위는 환자들의 약국 선택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높아
- 인근에 위치한 다른 약국들과의 관계 등에서 의약품 시장질서를 해할 가능성도 크다고 판단
상급 종합병원 인근에 즐비하게 늘어선 ‘문전약국’들이 공동으로 도우미를 고용해 환자들을 미리 정해진 차례에 따라 약국으로 안내한 행위는 약사법이 금지하고 있는 호객행위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조재연 대법관)는 12일 약사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 등 9명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유죄 취지로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동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
A씨 등은 2017년 용역회사를 통해 안내도우미를 공동 고용한 뒤, 의사의 처방 내용이 약국에 전송되지 않은 '비지정 환자'들을 미리 정해진 순번대로 안내하기로 약정하고 이 환자들을 상대로 호객행위를 한 혐의를 받았다.
1심은 이들의 행위가 약사법 등 법령이 금지한 호객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고 유죄로 판단했으나 벌금 50만원씩의 선고는 유예했다.
반면 2심은 무죄로 판단을 뒤집었다. A씨 등의 공모로 인해 불특정 다수 환자의 자유로운 약국 선택권이 침해됐다고 볼 수는 있지만, 이런 공동 도우미 제도가 호객행위에 해당해 의약품 판매 질서를 어지럽힌다는 인식이 A씨 등에게 있었으리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의 문전약국들은 동네약국과 달리 인근 상급종합병원이 처방하는 고가의 항암제나 마약 성분 진통제 등을 취급했다. 그런데 병원이 도로와 대학, 주차장으로 둘러싸여 있어 환자들이 도보로 오기에는 다소 거리가 있는 곳이었기 때문에 문전약국들은 병원 후문과 약국을 오가는 차량을 각자 운행해왔다.
하지만 병원 인근은 이런 약국 차량의 주차와 호객행위로 인해 혼잡해졌고, 2016년 문전약국 가운데 한 곳이 폐업한 뒤로는 일부 약국 직원이 세력을 이뤄 마찰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후 병원 방문자들의 민원과 일부 약국 직원 간의 마찰이 발생하자 문전약국 개설자들은 2017년 회의를 열고 도우미를 공동 고용하는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이런 방침은 지역 약사회와 병원 원무팀 등에도 고지됐다.
이에 2심 재판부는 "호객행위 등으로 민원이 빈발하고 약국 간에 분쟁이 생기는 등 여러 문제가 발생하였으나 관할 보건소나 병원에서 마땅한 해결책을 찾지 못하자 약국 개설자들이 자정노력의 일환으로 공동 도우미 제도를 도입한 것으로 보인다"며 "공동 도우미 제도는 의약품 판매질서를 확립하고 유지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선택한 것이라고 봄이 상당(타당)하다"고 판시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들에게 호객행위로 인한 약사법 위반의 고의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분쟁이나 갈등을 낮추려는 의도에서 공동도우미를 고용하게 된 경위를 감안하더라도 약국을 정하지 않은 환자들에게 접근해 편의 차량을 제공한 행위는 환자들의 약국 선택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높다”며 “‘공동 호객행위’의 한 형태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인근에 위치한 다른 약국들과의 관계 등에서 의약품 시장질서를 해할 가능성도 크다”며 “이전부터 호객행위 등 분쟁이나 민원이 빈번히 발생했던 상황에서 피고인들이 자신들의 행위가 호객행위임을 인식하지 못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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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훈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