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빅5 중 아산병원 제외 모두 미달... 길병원은 입원진료 중단, 소아진료체계 붕괴
- 소청과학회 “정부 필수의료 종합대책의 실효성 없어... 수가 인상 필요”
매년 최저 지원율을 보이던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율이 사상 처음으로 10%대로 추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동안 우려로만 제기되던 소아청소년과의 붕괴, 소멸이 이제는 현실로 찾아왔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회장 나영호)에 따르면 2023년도 전반기 전공의 모집에서 소아청소년과는 전국 총 199명의 정원 중 단 33명만 지원해 지원율이 16.6%를 기록했다. 일명 ‘빅5’라고 불리는 수도권 대형 병원 중에서도 서울아산병원만 소아청소년과 모집 정원 8명 중 10명이 지원해 정원을 채웠고, 나머지 4곳은 극소수만 지원해 모두 미달됐다.
인천광역시에 위치한 상급종합병원 길병원는 소아청소년과 입원 진료를 중단했다. 최근 몇 년동안 전공의 수급이 이뤄지지 않다가, 정원 4명의 내년 상반기 모집에서 1명도 지원하지 않으면서 더 이상 진료할 의료진이 부족해져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이다. 앞서 강남세브란스병원도 9월 1일자로 소아 환자의 응급 진료를 중단한 바 있다.
그동안 그렇게도 의료계가 경고해 왔던 소아진료체계 붕괴가 결국 현실화가 되어버렸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10%대의 전공의 지원율은 다른 기피과인 외과나 흉부외과 등과 비교해서도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소아청소년과는 내·외·산·소(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라 불리는 필수의료의 한 축을 이루고 있지만 심각한 저출산과 저수가, 높은 업무 강도에 더해 소아청소년과 의사를 옥죄는 사회적 분위기 등으로 인해 계속해서 의료진 충원에 어려움을 겪어왔다는 지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소청과 의사 A씨는 13일 기자와 통화에서 “저출산과 저수가, 높은 업무 강도는 말할 것도 없고 무엇보다 소청과 의사들의 사기를 떨어트린 것은 지난 2017년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집단 사망 사고’ 이후 후속조치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집단 사망 사고’ 이후 사법당국이 의사들에게 책임을 물어 의사들을 구속시켜 이후 선배 의사들이 법적공방을 벌이며 심각한 곤란을 겪는 것을 지켜본 의대생들이 더욱 소아청소년과를 기피하도록 부추겼다는 것이다.
A씨는 또 “‘맘카페’로 일컬어지는 소아청소년 환자의 부모들의 의료진에 대한 ‘갑질’도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율 하락을 부추겼다”고 말했다. 소아청소년 진료와 관련해 보호자들의 의료진들에 대한 항의가 지나쳐 이러한 ‘감정노동’에 대한 부담도 소청과 기피 현상의 기폭제가 됐다는 것이다.
소청과의 위기가 점점 더 심각해지자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는 최근 소청과에 대한 보상을 강화하는 필수의료 지원 대책을 내놨다. 소아암 지방 거점병원 5곳을 신규 지정해 집중적으로 육성하고, 중증 소아환자 치료를 하는 어린이 공공전문진료센터를 지정해 ‘사후 보상 시범사업’을 실시하기로 했다.
하지만 소아청소년과계 내부에선 지나치게 대학병원에만 지원이 집중돼 있고 이마저도 지켜지지 않아 시범사업에 참여해도 실제론 보상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또 국내에서 처음으로 시도되는 적자에 대한 사후보상 방식에 대한 의구심도 커 “만약 조금이라도 흑자가 발생하면 지원하지 않겠다는 것이냐”는 불안감도 형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제 정말로 동남아 국가 등에서 소아청소년과 의사를 수입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러 대한민국 소청과를 살리려면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파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지난 9일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는 성명을 통해 “정부의 필수의료 종합대책에 소아청소년과를 개선할 수 있는 대책이 전혀 제시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학회는 특히 입원 수가 100% 인상, 중증도에 따른 수가 가산, 의원급의료기관에서 경증질환을 전담토록 의료전달체계 개선, 전공의 수련지원책 등을 대책방안으로 제시했다.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장은 “동남아 국가 의사들이라고 우리나라에 올지도 솔직히 의문이 들지만 온다고 해서 과연 우리나라 부모들이 그 의사들에게 자기 아이들의 진료를 맡길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며 “의료계에서 수년 전부터 위기를 경고해 왔음에도 수수방관하고 있다가 급기야 현실이 되고 말았다. 사실상 현재의 위기를 당장 타파할 대책은 지금으로선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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