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생존자 극단 선택... ‘트라우마’ 등 정서적 치료 필요해

- 2차가해 멈추고 정부차원 피해자 관리 더 철저히 해야
- 국립건강정신센터, 이태원 피해자들을 향한 맹목적 비난 우려

이태원 참사 생존자인 10대 소년 A군이 12일 밤 11시 40분쯤 서울 마포구의 한 숙박업소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이날 오후 11시 10분쯤 A군 어머니의 실종신고를 받고 수색에 들어갔으며 30분 만에 A군을 발견했다. A군과 함께 숙박한 투숙객은 없었으며 범죄 혐의점도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은 A군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A군은 지난 10월 29일 발생한 이태원 사고 생존자이기도 하다. 사고 당시 친구들과 함께 이태원을 방문했었던 A군은 유서를 남기지 않은 것으로 전해져 이번 선택이 이태원 사건과 연관이 있는지는 불분명하다. A군과 함께 이태원을 방문했던 친구들은 모두 숨졌다.


사망한 10대 부모의 지인이라고 밝힌 한 시민은 SNS를 통해 "여자친구랑 오랜 절친과 3명이 놀러 갔다가 친구들을 모두 잃고 혼자 살아 남았고, (망자도) 다리 근육이 파열되는 부상을 입었다"며 "살아 남은 자의 고통을 고등학교 1학년이라는 어린 나이에 온전하게 견뎌 내기는 너무 힘들었던 모양"이라고 전했다.

이어 "참사 이후 정신과 치료도 받고, 학교생활도 잘 지냈지만 그의 휴대폰을 보니 이미 죽음을 준비하고 있었던 흔적이 가득했다고 한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집권 세력들이 노골적으로 희생자들과 유가족을 조롱하고 있는 사이에 가족들과 친구 등 살아 남은 자들은 그 고통과 모멸을 온전하게 감내하고 있다. 이 고통을 어찌 위로하나"고 통탄했다. 

A군의 사망 시점과 맞물려 13일에는 국민의힘 소속 김미나 창원시의원이 이태원 사고 관련 발언에 대해 사과했다. 김 의원은 “나라 구하다 죽었냐”, “자식 팔아 장사한다”는 등의 글을 SNS에 올렸다. 해당 글이 파문을 일으키자 “공인인줄 깜빡했다. 죄송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 의원 관련 기사에는 “의원이 맞는 말했다”는 옹호 댓글들이 달리고 있다. 이태원 참사 기사에는 “본인이 놀러가서 사고 난 걸 왜 희생자라고 하냐”, “이태원 간 애들 중 미래 밝은 애는 없을 듯” 등의 악성 댓글이 지속적으로 올라오고 있다. 이 같은 댓글에 많은 사람들이 ‘좋아요’를 누르며 공감대를 형성하기도 했다.

참사 당시 현장에 있던 생존자와 사망자 가족들은 현재 매우 큰 심리적 고통을 겪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황이다. A군의 사망이 악플과 연관이 있는지의 여부는 알 수 없으나, 이태원 사고 이후 심민영 국립건강정신센터 국가트라우마센터장은 이태원 피해자들이 비난과 같은 부정적인 반응에 노출될 가능성에 우려를 표했다. 일부 생존자는 온라인 댓글 등으로 고통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시사한 것이다.

참사 생존자 및 가족들이 겪는 트라우마는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는 스트레스 수준이 아니다. 일반적인 스트레스와 동일선상에 두면 오해가 생긴다. 이들이 일상을 회복하려면 주변의 따뜻한 지지가 반드시 동반돼야 한다.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최수희 교수는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은 ‘정서적 지지’가 필요하다”며 “과도한 죄책감을 느끼기도 하므로 정서적 지지를 충분히 전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심리적 안정을 얻으려면 주변 도움이 필요한데, 온라인 공간에는 오히려 도 넘는 악성 댓글이 난무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2019년 포털 사이트들은 악성 댓글을 막고자 연예뉴스 댓글 서비스를 종료했다. 하지만 한쪽 구멍이 막히자 다른 구멍이 뚫렸다. 연예인, 정치인 등 유명인은 악플에 대한 자신의 불쾌감을 적어도 토로할 수 있지만, 일반인 타깃 악플은 더욱 일방향적인 성질이 있어 손가락 하나로 사람을 궁지에 몰 위험이 매우 크다. 이는 이태원 사고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다. 누구나 ‘손가락 살인’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정부는 이태원 사고 사상자 및 가족들에게 신체적·정신적 질병 및 후유증에 대한 의료비를 지원하고 일상회복을 위한 심리상담을 진행하고 있지만 이것만으론 역부족인 상황이다.


이태원 사고를 왜 적극적인 대책과 재방 방지책이 필요한 국가 재난인지 보다 많은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논리를 마련하고, 참사 피해자들이 왜 지속적으로 심리적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는지 진단에 나서는 등 보다 총체적인 대응이 필요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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