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헌재, 지급보류제도 규정 건보법 조항 ‘헌법 불합치’ 판단
- 지급 보류, 법원 판결 나오기 전 혐의만 있어도 급여비 지급 중단할 수 있어
- “사무장 병원 규제 목적 입법은 정당하지만 과잉 금지 원칙에 위반”
‘사무장 병원’이라는 의심만으로 요양급여비 지급을 ‘보류’하던 건강보험공단의 행보에 브레이크가 걸리게 됐다. 헌법재판소가 지급보류를 규정하고 있는 국민건강보험법 조항의 자체가 헌법에 불합치하다고 보고 사실상 위법이라는 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다. 건보공단은 내부적으로 준칙까지 마련해 불법 개설 의료기관 대상 제재를 하고 있지만 법 조항의 자체가 위헌이라는 판결을 받은 이상 제도 개선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23일 헌법재판소는 건보공단의 요양급여비 지급보류 제도를 규정하고 있는 국민건강보험법의 제47조의2 제1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다. 헌법불합치는 심판 대상인 법 조항이 위헌이긴 하지만 곧바로 법의 효력을 중지시키지는 않고 법 개정까지 적용한다는 결정이다. 사실상 개정이 필요한 위헌이라는 판결이다.
건보공단은 지난 2014년 11월부터 사무장병원과 면허대여 약국으로 확인된 요양기관에 대해 요양급여비를 ‘지급보류’ 했다. 지급보류를 규정하는 법인 건보법 제47조의2 제1항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요양급여비 지급을 청구한 요양기관이 사무장 병원 등 불법적인 개설을 한 의료기관이라는 수사기관의 수사결과로 확인 했을 때 법원의 판결 전이라도 건보공단으로 하여금 해당 요양기관이 청구한 요양급여비 지급을 보류할 수 있는 내용이다.
해당 조항의 문제가 공론화 된 것은 한 검찰이 한 충청남도의 의료재단이 사무장 병원을 운영한다는 혐의를 적용해 해당 의료재단의 이사장 등을 의료법 위반 혐의로 공소를 제기한 사건이 발단이 됐다. 비의료인은 의료법인을 설립할 수 없는 의료법을 회피하기 위해 이를 가장하여 형식적으로 의료법인을 설립했다고 본 것이다. 건보공단을 검찰 수사 결과를 근거로 요양급여비 지급을 보류했다.
문제는 재판에서 이 결과가 뒤집히며 발생했다. 검찰이 제기한 형사재판에서 의료재단의 이사장 등이 무죄판결을 받은 것인데 검찰 입건 이후 판결까지 검찰의 수사결과를 믿고 지급보류 처분을 내린 건보공단의 요양 급여비가 16억 원에 달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이자까지 더하면 그 액수는 더 크다.
하지만 의료재단은 16억 원에 달하는 해당 급여비를 지급받지 못했다. 건보공단은 지급보류 처분을 내렸던 시점부터 그 비용을 소급해서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이전의 처분 내용은 그대로 유지하고, 재판 판결 시점 기준으로 처분을 해제해 앞으로의 급여비만 지급하겠다는 입장을 취했기 때문이다.
이에 의료재단은 건보공단을 상대로 지급보류 처분 취소와 함께 지급보류된 요양급여비, 이에 대한 이자 등의 지급을 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더불어 지급보류 관련 법 조항이 위헌이라고 주장하면서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을 했지만 그 신청이 기각되자 헌법소원 심판도 청구했다.
1심을 맡은 대전지방법원은 건보공단 패소 판단을 내렸다. 지급보류된 요양급여비와 이에 대한 이자 등을 지급하라는 판단을 내린 것. 이사장 등이 형사 소송에서 무죄 판단을 받은 게 주요하게 작용했다. 건보공단은 항소를 선택했고 2심을 맡은 대전고등법원은 지급보류 규정 법 조항의 위헌 여부가 재판의 전제가 될 뿐만 아니라 이를 위헌이라고 인정할 상당한 이유가 있다며 위헌법률심판제청을 했다.
이에 헌재는 2021년 7월 건보법 제47조의2 제1항의 위헌성을 판단하기 위한 공개변론까지 진행했다. 쟁점은 수사기관의 수사 결과만으로 요양급여비 지급을 보류하는 게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해 재산권, 직업수행의 자유를 침해하는지다. 또 유죄 확정판결이 있기 전 요양급여비 지급을 보류할 수 있도록 한 것이 무죄추청의 원칙에 반하는지도 쟁점 중 하나다.
그리고 이날 헌재는 해당 법 조항에 위헌 소지가 있다고 봤다. 다만 입법으로 보완을 하라는 입장을 내놨다.
헌재는 "지급보류 법 조항은 무죄추정 원칙에 반하지 않으며 사무장병원을 규제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입법 목적은 정당하다"라면서도 "수사기관이 수사 결과만으로 완화된 요건에서 지급보류 처분을 할 수 있도록 하면서도 반대로 수사결과 통지가 잘못됐을 때에 대한 구제책이 없어 과잉금지 원칙에 위반된다"고 밝혔다.
수사 결과가 확인됐다는 이유만으로 요양급여비 지급을 보류하는 것은 과잉금지 원칙을 위반해 요양기관의 재산권, 직업수행의 자유, 평등권을 침해한다는 당시 사건 의료재단 측의 주장을 받아들인 셈이다.
의료재단 측 법률대리를 맡은 변호사는 "건강보험 체계에서 건보공단과 요양기관의 관계는 대등함에도 지급보류 제도는 건보공단에 지나치게 과도한 권한을 주고 있다. 그러면서도 통제 장치는 전혀 없어 보험자인 건보공단의 권한 남용이 있을 수밖에 없다"라며 "실제 건보공단의 위법한 지급보류 처분으로 정상적인 의료기관이 도산한 게 한두 개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공권력 행사는 예측 가능한 범위에서 절차를 지켜 집행해야 한다"라며 "건보공단이 지급보류 처분을 하더라도 기간과 금액을 요양기관이 견딜 수 있을 만큼으로 정하고 처분 이후 건보공단의 위법한 지급보류가 확인되면 건보공단이 요양기관에게 영업권 상당의 손해를 배상토록 규정하는 보완입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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