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심정지 환자에도 ‘주치의’ 아니라며 조치 안한 의사, 손해배상”

- 서울동부지법, 유족이 청구한 손해배상 청구 일부 승소 판결
- 심정지 환자 보고도 주치의 아니라며 응급조치, 사망선고 안 해
- 재판부 “주의의무 위반해 불성실한 진료로 고통 끼쳤다” 손해배상 인정

야간 당직을 서던 도중 심정지 환자가 발생했지만 본인이 주치의가 아니라는 이유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의사가 해당 환자의 유족에게 손해배상을 하게 됐다.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최근 서울동부지방법원은 환자 유족이 병원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에 관련해 일부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해 병원 측이 1,000만 원과 지연 이자를 더해 유족에 배상하라고 일부 승소를 선고했다.

A씨는 지난 2021년 6월 10일 B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던 중 22일 오전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A씨는 입원 이후 증세가 호전되고 있었으나 사망 사흘 전부터 발열 증세를 보이고 새로 폐렴도 확인되면서 상태가 급격하게 악화됐다.

같은 달 22일 오전 5시 25분경 같은 병실 환자의 보호자가 병동 간호사 C씨에게 “A씨가 숨을 안 쉬는 것 같다”고 알렸고, C씨는 활력징후 등을 확인한 뒤 당직의사 D씨를 호출했다. A씨가 심정지 상태에 빠진 것이다.

그러나 병실에 도착한 당직 의사 D씨는 A씨의 상태를 살펴 본 뒤 “주치의가 아니라 왜 나를 불렀느냐”는 질문을 한 뒤 그대로 병실을 나왔다. 유족에게 상황을 알린 간호사 C씨가 오전 6시 8분경 다시 D씨에게 연락해 사망선고를 내려달라고 요청했고, D씨는 5시 45분자로 A씨가 사망했다는 사망진단서를 작성했다.

유족은 당직 의사인 D씨가 심정지 상태인 A씨를 보고도 심폐소생술 등 응급조치를 전혀 취하지 않았고, 불성실한 진료로 업무상 주의의무를 위반한 것이라며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병원 측은 “D씨가 진찰할 당시 이미 환자 A씨는 사망해 소생 가능성이 없었기 때문에 의료진이 심폐소생술 등 응급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또 의사 D씨가 병원 측의 주장대로 사망을 확인 한 직후에 사망 선고를 내리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도 “사망한 환자의 보호자가 그 자리에 없었기 때문에 사망 원인을 몰라 이에 대해 설명하거나 섣불리 사망선고를 내릴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유족 측의 주장이 일리가 있다고 판단했다. D씨가 의사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조치를 다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이 사건의 진료기록감정의는 “심폐소생술을 거부한다는 사전 동의도 없었고, 시반이나 사후강직 등 비가역적인 사망 징후가 관측되지 않는 한 의료진은 심정지 환자를 목격하면 지체없이 심폐소생술을 시행하고, 기관 삽관, 에피네프린 등 약물투여, 제세동 등 시행했어야 한다”는 의견을 제출했다.

사망한 환자의 주치의 역시 유족에게 “돌아가신 분께 죄송하다. 새벽에 그런 일이 있었는데 당직 의사의 처치는 저도 못마땅하다”라며 당직 의사 D씨의 행동이 부적절 했음을 인정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병원에서 심정지가 발생하면 심폐소생술 시행이 원칙이다. 의사 등 의료인은 여러 사정을 고려해 환자가 소생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될 때 중단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그러나 당직의사 D씨는 심폐소생술을 비롯한 응급의료행위를 전혀 하지 않았고, 그 이유를 진료기록에 남기거나 유족에게 설명하지도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D씨는 야간 당직이고 B병원의 야간과 새벽 시간 환자 진료와 응급의료행위에 대한 업무상의 의무가 있다. 그런데 사망한 환자 A씨에게 적절한 의료행위를 하지 않은 것은 물론 유족에게 사망 경위와 원인도 전혀 설명하지 않고 환자가 비가역적으로 사망했을 때 의사로서 해야 할 사망 선고도 제대로 내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D씨의 행위는 일반인 입장에서 봐도 받아들일 수 있는 한도를 넘어서 현저하게 불성실한 진료였다”라며 “D씨의 업무상 주의의무 위반으로 인해 사망한 환자 A씨와 유족이 느꼈을 정신적 고통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에 재판부는 당직의사 D씨와 B씨를 운영하는 운영자가 공동으로 유족에게 총 1,000만 원을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다.

<저작권자 ⓒ 의사나라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