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격의료를 바라보는 의료계의 시선 변화. 원격의료의 미래를 논하다

- 최근 들어 원격의료를 바라보는 의료계 내부 시각이 바뀌고 있어. 받아들이는 분위기를 넘어 먼저 나서서 대응책을 마련하자는 목소리
- 책임 문제가 민감한데, 책임 문제는 명시적으로 감경해야. 다만 남용 방지책으로 의사 1인당 하루 원격의료 환자 수를 제한

원격의료는 그동안 의료계의 오랜 난제이자, 섣불리 공론화하는 것조차 어려운 주제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 원격의료를 바라보는 의료계 내부 시각이 바뀌고 있다. 파업까지 할 정도로 ‘무조건 반대’를 외쳤던 의료계지만, 이제는 받아들이는 분위기를 넘어 먼저 나서서 대응책을 마련하자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 30일 서울시의사회 원격의료연구회가 진행한 제3차 세미나에서는 한시적으로 허용된 원격의료(비대면진료)가 본격적으로 제도화될 상황을 가정해 논의가 이어졌다. 이 자리에서는 기본진찰료 외에도 처방료 등 합리적 수가가 마련되어야 하며, 환자본인확인·진료장면 녹화 등에 대한 법적 분쟁 요소로부터 의사들이 보호되어야 한다는 등 현실적인 의료계 건의 사항이 나왔다.

◆ 합리적 수가 마련이 절실
먼저 발표에 나선 최상철 연구원은 저수가 기조의 기존 진찰료가 적용되는 한시적 비대면 진료에서 벗어나, 비대면진료(원격의료)가 제도화된다면 합리적인 수가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구체적으로 처방료를 신설하고, 전화상담 인정비급여도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최 연구원은 “미국 의료보험회사들이 원격진료에 대한 수가를 대면진료 수가보다 훨씬 낮게 책정하는 바람에 미국 의료인들이 원격진료를 기피했다”며 “코로나19이 창궐하자 의료보험 회사들이 원격진료 수가를 대면진료 수가에 상응할 정도로 상향, 이후 의료인들이 원격진료를 활용하는 비율이 증가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의료의 시작과 끝은 수가가 결정, 원격진료도 수가 여부가 제일 중요하다. 국민건강보험법상 원격진료는 아직 명시적인 수가, 즉 진료비 지급 근거가 없다. 한시적으로 허용된 비대면진료 전화상담 및 처방은 기존 진찰료를 동일하게 적용하도록 금액을 정했다”면서 “그러나 기존의 진찰료는 지나치게 포괄수가형식으로 구성되어 있고 다양성이 떨어지며, 매년 3~400원정도만 오르는 구조에서는 합리적인 원격의료 수가 제도마련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최 연구원은 비대면진료 제도화시 일차의료기반으로 체계가 정립되고,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마련되며, 불필요한 진료증가를 제어하고, 건보재정 연속성, 환자안전성 등을 모두 고려할 것을 선제조건으로 걸었다. 이어 이 같은 선제조건하에 진찰료 외 처방료를 신설하고, 전화상담을 비급여로 인정하며, 다양한 신의료기술이 등록되는 등의 수가 다양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최 연구원은 기존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의결구조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우나, 한시적 비대면진료와 재택치료가 허용된 상황에서 마련된 재택치료협의체와 같은 의·정 논의창구를 통해 합리적 수가 마련을 유도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 '환자 본인 확인 문제'도 점검이 필요
한편 최상철 연구원은 원격진료 시 '환자 본인 확인'의 문제도 점검해야 할 사안이라고 밝혔다.

원격진료는 대면진료보다 본인 확인이 더욱 어렵고, 비대면 진료임을 악용할 경우 심각한 약물 오남용 범죄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점에서 정부가 본인확인을 더욱 강조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최근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의료기관이 내원환자 본인확인을 의무화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의료기관이 직접 건강보험 자격을 확인해야 하며, 의무를 위반할 경우 과태료 및 징수금 제재를 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최 연구원은 "이 법이 통과된다면 모든 환자를 전산으로 확인해야 하는 의무를 의료기관이 갖게 되고, 책임도 우리가 갖게 된다. 의료기관은 사기를 당한 피해자의 입장인데, 오남용한 환자로 인해 피해자인 의료기관이 벌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우려된다"고 밝혔다.

◆ 직권 남용 방지책으로 ‘원격진료 일일 숫자 제한’ 제시
다음으로 나선 이세라 상임 연구원은 ‘원격의료 관련 법률 개정을 위한 노력’이란 발표를 통해, 그는 사전에 몇 가지 사안들을 제시하면서 합리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함을 이야기하였다.

“강병원, 최혜영 의원이 원격의료와 관련된 개정안을 발의했는데, 두 개정안 모두 의원급으로 대상을 한정 지었다. 하지만 원격의료를 제한을 둬선 안 된다고 본다”며 “대상 환자 역시 재진 또는 만성질환자 등으로 한정돼 있는데 여기에 더해 경증 초진 환자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책임 문제가 민감한데, 책임 문제는 명시적으로 감경해야 한다”며 “지원책에 있어서 원격의료에 필요한 시설, 장비 예산을 일부 또는 전액 지원에 그치지 말고 법령 규제를 완화하고, 플랫폼 사업할 때 의사단체에 대해 지원해 줘야 한다”며 “다만 남용 방지책으로 의사 1인당 하루 원격의료 환자 수를 제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덧붙여 원격진료의 방에 대해서는 “대면진료 비용보다 진료비 총액 및 본인 부담금을 인상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 일반적인 진료비용이 심층진료비용 9만 원 정도가 정상적인 진료비용이고, 원격의료 관련 비용은 그보다 낮으면 아마 참여할 수 있지 않나 싶다”며 “진료비 선불제도를 도입하고, 일당 처방료를 도입하는 것도 생각해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세라 상임연구원의 발표 이후, 서울시의사회 박명하 회장이 “많은 분들이 원격진료가 실시된다면 의원급에서 해야한다고 하고, 병원급으로 확대하는 것을 걱정해 반대하는데, 모든 의사에게 원격의료를 제한을 풀어야 한다고 한 이유를 설명해 달라”고 질문하자, 이에 이 연구원은 “지금 비급여 진료비가 병원급에서 시작하다가 의원급으로 내려왔는데, 그와 같은 방식으로 의원급에서 원격의료를 시작한다고 하더라도 여론에 의해 대학병원으로 갈 것이 자명하다”며 “의원급으로 제한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의사 1인당 원격의료 진료 환자 수를 제한하는 것으로, 이를 통해 환자가 한쪽으로 몰려가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고 답변했다.

◆ 비대면 약 구매 정착시 ‘성분명 처방 허용’에 대한 대책 마련 시급
원격의료 제도화시 필연적으로 따라올 비대면 약 구매가 자리잡을 경우, 성분명처방이 활성화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제기됐다. 의료계는 원격의료 논의 시 이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발표에 나선 김경희 연구원은 “비대면진료 한시적 허용 이후 조제약 배달 서비스에 약사사회가 반발하는 목소리가 있다”면서 “비대면 약 구매가 허용된다면, 의료계 입장에서 가장 우려되는 점은 성분명 처방”이라고 밝혔다.


또한 비대면 의약품 수령이 성분명 처방으로 접근할 수 있는 단초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경계했다.


그는 “2000년 의약분업 당시 의사들에게 조제권을 박탈하면서 처방권을 보장해줬는데, 성분명처방을 한다는 것은 의약분업의 근간을 흔드는 문제”라며 “약사회 등에서 유럽, 일본 등 성분명처방이 일반화돼 있다고 하지만 이는 사실무근으로, 유럽은 성분명 처방을 하지만 대부분 상품명으로 처방하고 있다. 일본은 대체조제도 금지이고, 선택권은 의사에게 있다”고 전했다.

예를 들어 처방한 회사의 약과 달리 지역의 약국 사정에 따라 해당 회사의 제품이 없고 동일한 성분의 다른 약을 전달해야 하는 상황이 다가올 수 있다. 이 때문에 약사사회에서는 원격의료 제도화시 성분명처방을 강조하는 중이다.

이에 대해 김경희 연구원은 “약사회가 편의성을 이유로 (원격의료 제도화시) 성분명처방을 주장한다면, 영유아나 장애인, 어르신 등은 예외 확대를 의료계에서 주장해야하며, 의약품 조제장소를 선택하는 선택분업을 확대해야 하는데 목소리를 내야한다”면서 “또한 성분명처방의 위험성을 알리는 등 안전성문제가 있다는 것으로 국민들에게 교육하고 홍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에 대해 이세라 상임연구원(서울시의사회 부회장)도 "성분명 처방에 선택분업제도로 맞서는 것에 동의한다"면서 "의료기관내에 특정약품을 보관하다가 약품배송하는 것을 조건으로 재택진료에 참여하는 것도 또 다른 대안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 법적 분쟁요소 최소화로 의사 보호의 필요성
원격의료 제도화시 발생하는 환자본인확인 문제에 대해 최상철 연구원은 “원격진료는 대면진료보다 본인확인이 더 어렵다”면서도 “접속하는 전자기기에서 본인인증을 거칠 수도 있으므로, 본인확인이 오히려 수월한 측면도 있다. 본인확인이 필요하다면 원격진료 시작전에 환자가 보유한 전자기기에서 본인 인증절차를 거치도록하고, 의료기관은 본인확인의 책임에서 벗어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최근 국회 법사위까지 올라간 의료기관 내원환자 본인확인 의무화 법이 통과될 경우 이 같은 대안을 제시해보기도 전에 의료계가 부담을 떠안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경희 연구원은 “화상회의 플랫폼 등을 통해 원격진료가 이뤄질 시 환자들도 자신의 개별장치를 이용해 진료장면을 녹화하는 것이 용이하다”면서 “대화당사자인 환자가 녹음하고 녹화하는 경우는 위반이 아니며 형사소송시 증거능력 제한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자료 유출시에 대한 책임소재 문제가 의사들에게 불거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촘촘한 세부법안으로 분쟁가능성을 최소화해야한다고 강조했다.

더 나아가 김철 연구원은 개인정보보호를 위한 입법을 고민해봐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원격진료의 경우 모든 의료행위가 진료장비, 처리소프트웨어, 인터넷 네트워크 접속 등을 통해 이뤄지므로 보관 등 모든부분에서 보안취약성을 가질 수 밖에 없다”면서 “개인의료정보 및 진료기록부 등이 분식, 복제, 변질, 유출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를 방지하는 것이 현재 개인정보보호법 규정하에서 충분한지 아니면 원격진료에 수반되는 보완입법이 필요한지 고민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 명확한 기준의 법제화 필요
아울러 명확한 원격진료 시설기준의 법제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연구원은 “원격의료는 통신매개체의 장비정확성 문제를 수반한다.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한 진단과 처방에 있어서 의료사고 가능성의 문제도 제기된다”면서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구체적이고 상세화된 기술적 기준과 표준화가 필요하고, 시설과 장비에 대한 인증제도가 병행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저작권자 ⓒ 의사나라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