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일 국회서 ‘분만 인프라 붕괴와 의료 소송의 현실’ 토론회 개최
- 중대한 의료과실 없이도 수년씩 끌며 수십억에 달하는 소송 오가는 산부인과
- 정부, 저출산 문제 대대적으로 강조하면서 산부인과 의료사고에 고작 3000만 원만 보상
최근 분만 과정에서 신생아에게 뇌성마비가 발생한 사고와 관련해 법원이 분만을 담당했던 의사에게 12억 원에 달하는 배상 책임이 있다고 판결하는 등 분만 사고에 수십억 대 배상판결 기조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의료 현장에서는 무과실 의료사고에 대한 국가 보상금액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분만이라는 행위는 본질적으로 위험성이 큰 행위이고, 잘못한 이가 없더라도 산모나 태아의 사망, 신생아 뇌성마비와 같은 사고들이 안타깝게도 불가피하게 생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현행법상 분만사고에 대한 국가의 보상액은 최대가 3000만 원 수준이다. 수십억 대의 손해배상금이 오가는 와중, 비현실적인 국가 보상액은 결국에 산부인과 의사들과 산모사이에 법적 소송으로 치닫도록 조장하고 있다. 또, 이같은 소송 위험은 의사들로 하여금 산부인과, 분만을 꺼리도록 만들고 있다.
15일 국회박물관에서 열린 ‘분만 인프라 붕괴와 의료 소송의 현실’이라는 주제로 토론회에서도 이같은 우려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의료계와 법조계 전문가들은 무과실 분만사고에 대한 국가 책임을 강화할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의료계 인원으로 참석한 경북대병원 산부인과 성원준 교수는 최근 판결이 내려진 판례 3건을 언급하며 무과실 분만사고 보상제도의 국가 보상액을 인상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성 교수가 소개한 3건의 판례 중 2건의 경우는 환자가 승소했고, 1건의 경우는 의사가 승소한 케이스였다. 성 교수는 환자가 승소한 케이스에서는 의사가 10억 원이 넘는 손해배상 책임이 부과됐고, 의사가 승소한 경우에는 환자가 장애를 얻은 아이를 키우는 데 드는 막대한 개호 부담을 온전히 떠안았다는 점을 지적했다.
결과도 결과지만 그 과정도 문제가 있다고 꼬집었다. 성 교수의 발언에 따르면 분만사고 소송에서 1심 결과가 나올 때까지 평균적으로 4년이 걸렸고, 최종심 판결이 내려질 때까지 7~10년이 걸린다. 재판 결과를 떠나 오랜 시간동안 의사와 산모 모두 법정 싸움으로 인한 고통을 받고 있는 셈이다.
성 교수는 산모의 출산과 의사의 분만 의료행위 모두 선의를 갖고, 우리 사회가 유지될 수 있게 기여하는 행위라는 점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키며 저출산 기조, 의사들이 분만을 기피하하는 현상이 짙어지고 있는 가운데 소수의 여성과 소수의 의사들만 출산과 분만을 선택하여 사회에 기여하고 있는 만큼, 그 과정에서 발생한 예기치 못한 비극에 대해선 국가가 두 손을 걷고 책임져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 교수는 “산모와 산부인과 모두 선의를 가지고 선택한 일인데 우연히 발생한 사고에 대해서는 당사자들끼리 소송을 통해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산모는 신속하고 안정적으로 보상을 받고, 의사들은 부담을 덜고 최선의 진료를 할 수 있도록 무과실 보상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현재 국내의 경우 의료분쟁조정법을 통해 무과실 분만사고에 대해선 정부가 산모에게 보상하도록 법적 근거가 마련되어 있지만 사고 결과로 들어가는 막대한 개호비용을 감안하면 최대 3000만 원에 제한되어 있는 보상은 턱 없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성 교수는 “일본의 경우 과실 여부와 무관하게 분만과 관련이 있다고 판단되는 신생아 뇌성마비에 대해선 산모에게 3억 원을 보상해주고 있다. 이를 통해 분만사고 관련 소송 감소와 산과 의사 증가라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며 보상액을 현실에 맞게 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법조계 역시 의료계의 분만사고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강화하자는 주장에 큰 이견이 없이 동의했다.
법부법인 세승 김선욱 변호사는 이날 참석한 자리에서 분만사고 소송에서 손해배상 금액이 과거에 대비해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지고 있는 것은 최저임금 상승과 기대여명의 증가로 인한 개호비 상승 등이 원인이라며 2010년대에 들어서는 10억 원이 넘는 개호비용이 책정되고 있고, 오는 2030년이 되면 더 높아져 총 배상금이 20억 원이 훌쩍 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 변호사는 판사들로서도 일종의 산식에 따라 수치를 대입해 손해배상액을 책정하고 있고, 이는 불가피한 상황이라면서도 ‘손해의 공평 타당한 분배’라는 민사소송의 기본 이념에 비춰봤을 때 다른 나라들에 비해 현저히 낮은 분만 수가를 받는 우리나라의 산부인과 의사들에게 수십 억원에 이르는 고액 배상 판결은 불합리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병원 입장에서 포괄수가제를 통해 받는 분만 수가가 과연 정상적이냐. 분만이 내재하고 있는 위험 비용을 포함한다고 할 수 있느냐”며 “우리와 유사한 건강보험 구조를 가진 일본만 보더라도 분만수가가 5~10배 이상 차이난다. 같은 사건이 일본에서 발생했다면 수가가 10배 이상이 되니 그만큼 병원이 부담 능력이 더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그 부분에 대해선 법원이 결정권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간단하게 말하자면 의료분쟁조정법 시행령을 개정해 보상액을 현재 3000만 원에서 대폭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변호사는 무과실 분만사고 보상액 현실화가 사회보장 정책이자 저출산 해결책이기도 하다며 보상액을 10억으로 인상하자고 구체적인 액수까지 언급해 제안했다.
그는 “뇌성마비 신생아는 장애를 갖고 살아가야 하는데, 지금도 정부에서 장애인이나 치매 노인에 대해 간병비를 지원하는 정책을 펴고 있지 않느냐”며 “또 재판에 수년이 소요되는 과정에서 환자와 산모 나아가서 한 가정이 입는 피해는 어마어마하다.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보장 정책 측면에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무과실 분만사고 보상제도보다 중요한 저출산 대책이 어딨느냐”며 “저출산 대책에 들어가는 연간 15조원의 돈 중 0.1%만 써도 기금은 충분히 해결하고 남는다”고 덧붙였다.
이날 변호사들 뿐만 아니라 참석한 판사들도 이들과 비슷한 의견을 보이며 가혹한 현실에 동의했다. 유독 의사의 실수에 가혹한 배상이 내려지는 현 상황이 안타까우며, 이를 위해 국가 지원이 절실하다고도 했다.
강동훈 광주고등법원 제주재판부 판사는 “우선 개인적으로 의료 소송을 하면서 많이 든 생각은 누구나 일을 하는 과정에서 실수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며 “내가 일을 하다가 실수를 했다고 해서 5억, 10억 원을 배상할 일은 없다. 다른 직업도 마찬가지인데 의사의 경우에만 과실의 결과가 너무 가혹한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고 안타까워 했다.
이어 “의료행위는 다른 사건들과 다르게 가해를 하려다 발생한 것이 아닌 도와주려다 발생한 것이라는 점을 참작할 필요가 있다”며 “또 나쁜 결과의 시발점에 의사가 개입하는 것은 없고 대부분의 환자들이 병원에 찾아오거나 분만의 경우에는 임신을 해서 오는 등 그 이후의 과정에서 그런 결과가 나온 것이기에 최초의 사태의 발생에 의사가 제공한 것이 없다. 때문에 의사가 온전히 그 책임을 지는 것이 맞느냐는 의문도 든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도 “최저임금 상승 등과 맞물려 배상액이 큰 폭으로 상승하고 있는데, 손해배상액 분배는 이미 발생한 손해를 상정해 놓고 이를 어떻게 환자와 의사 사이에 나눌지의 문제”라며 “손해배상액이 올랐단 이유만으로 양자 사이의 책임비율을 조정해 의사의 책임 비율을 낮춰야 한다는 논의로 연결되긴 어렵다”고 현실적인 문제를 지적했다.
강 판사는 또 “판사는 소송이란 링 위에 올라온 환자와 의사 사이에서 손해를 누가 더 부담해야 할지 결정해야 한다. 링 위에 제3자를 강제로 끌어올릴 순 없다”고 법원 차원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엔 한계가 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어 “의료는 사회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고 그 과정에서 실수 혹은 실수가 아니더라도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환자도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며 “그런 결과는 사회가 분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분만은 내재된 위험이 늘 있다. 그게 우연히 현실화했을 때 그 우연에 얽힌 환자와 의사 사이에서만 손해를 분담케 하는 건 양측 모두에게 가혹하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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