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독감예방접종을 맞고 난 뒤 길랑-바레 증후군 증상이 발생한 환자에 대해 대처를 소홀히 했다고 인정되는 의료기관에 대해 손해배상책임을 명령했다.
A씨는 2015년 10월 2일 E의원에서 독감예방접종을 받은 후 기침, 열, 두통, 쇠약감이 발생했고, 상기도 염증 등 호흡기질환으로 주거지 인근 병원에서 여러차례 치료를 받았다. A씨는 11월 10일 팔,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증상, 즉 사지 위약감이 발생해 서울 소재 B병원 응급실에서 진료를 받았고, 다음날 B병원 내과 외래 진료 후 입원하게 됐다.
A씨는 같은 달 13일 '혀가 싸하면서 말이 잘 나오지 않는다'고 구음장애를 호소하면서 배뇨장애 증상도 나타났고, 양쪽 하지에 힘이 안 들어가며 얼굴 찡그림이 안 되는 등 마비 증상들을 호소했다. B병원 의료진은 신경과 협진을 진행해 같은 날 뇌 MRI 결과 길랑-바레 증후군을 추정 진단했으며, 확진을 위해 신경전도 검사와 척추 천자 검사 등도 시행했다.
A씨는 14일 체온이 떨어지며 호흡이 정지(1차 호흡정지)됐다. 의료진은 심폐소생술 등 응급처치를 시행했고, A씨를 중환자실로 전실시켜 인공호흡기 치료를 했다. A씨는 이후 24일에도 호흡곤란을 겪었고, 12월 7일 및 12월 15일에도 재차 호흡곤란을 겪었다. A씨는 이달 24일 2차 호흡정지로 인해 중환자실로 전실됐으나 저산소성 허혈성 뇌손상으로 인한 중증의 사지마비 및 의식장애 상태로 노동능력의 100%를 상실했다.
길랑-바레 증후군은 감염, 백신 등의 투여 또는 원인미상의 면연학적인 원인에 의해 발생하는 말초신경 손상 질환이다. 말초 신경세포에 대한 면역공격을 통해 신경부전을 일으킨다.
A씨 측은 B병원 측이 경과관찰 및 대처에 소홀했고, 응급조치상 과실이 있으며, 설명의무도 위반했다며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1차 호흡정지 후에도 A씨가 종종 호흡곤란을 호소했으므로, 신속히 신경과로 전과하고 A씨를 집중 감시할 의무가 있었음에도 감시와 그에 대한 대처를 소홀히 해 2차 호흡정지에 이르렀다는 주장이다.
1심 재판부(서울북부지방법원 제12민사부)는 A씨 측의 주장을 일부 인정했다.
재판부는 “신경과 협진 하에 신경학적 검사가 진행되던 상태에서 1차 호흡정지 이후 신경과 전과 시기만을 탓하여 의료진의 과실 및 2차 호흡정지 사이와 인과관계가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라며 일부 주장을 받아들지 않았으나, “병원 의료진은 길랑-바레 증후군의 후유증인 호흡근, 구음근 위약 및 질식 등 기질적 원인에 대한 후속 감별진단을 하지 아니한 채 통상적인 대증요법을 사용하는 등 경과관찰과 그에 따른 대처를 소홀히 한 의료상 과실이 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판단했다.
법원의 C의료원장의 진료기록감정촉탁 결과에 의하면, 길랑-바레 증후군의 급성기와 같이 위약이 급격하게 진행되는 경우가 아닌 시점, 즉 회복기 추세에서 이 사건과 같이 환자가 간헐적 호흡곤란을 호소할 경우 '폐렴이나 호흡근 위약, 질식 등의 기질적 원인이 감별이 됐고', '일시적으로 호전되는 경우'에는 통상적으로 중환자실 치료를 하지 않으며 활력 징후에 대해 감시하게 된다는 의견이 나왔다.
그러나 재판부는 A씨에 대해서는 정신과 협진 외에 호흡근, 구음근 위약, 질식 등의 기질적 원인에 대한 감별, 필요한 경우 호흡기내과 협진 등의 후속 감별진단 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보았다. 물론 길랑-바레 증후군과 관련된 다른 심장 질환으로 인한 심장마비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으나, 2차 호흡정지 이후 24시간 동안 진행된 심전도 모니터링 및 심초음파 진행 결과 특이소견이 발견되지 않았다.
병원 진료기록상으로도 2차호흡정지는 길랑-바레 증후군과 관련된 자율신경 이상으로 인한 심정지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추정돼 있다.
재판부는 “병원 의료진이 길랑-바레 증후군에 따른 신경학적 질식 등에 관한 감별진단을 소홀히 한 것은 의료행위의 성질에 비추어 위험방지를 위해 필요한 최선의 주의의무나 임상적, 규범적 관점에서 요구되는 의료수준에 미치지 못한 것으로써 의료상 관실로 평가함이 상당하다”며 4,800여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항소심 역시 원고 측 추가 주장을 인용하며 B병원 측이 A씨 측에 5,000여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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