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산 집행에만 급급한 정책에 ‘사각지대’ 발생... 고용·주거 등 핵심 요인 해결 못해
- GDP 대비 가족관련 공공지출 수준 OECD 평균미달... 현금 지원 등 직접적인 지원도 미흡
정부가 지난 15년간 ‘저출산’을 해결하기 위해 약 280조 원에 달하는 예산을 퍼부었음에도 저출산 현상이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곤두박질 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단편적, 단기적인 정책을 원인으로 꼽으며 장기적인 종합대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하고 있다. 또 청년 세대에게 결혼과 출산이 절대적인 규범이 아니게 되는 시대적인 흐름 속에서 이들의 자립을 지원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 실질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덧붙인다.
2000년대 초반 저출산·고령화 위기감이 나타나자 정부가 곧바로 대응에 나섰다. 2004년부터 국가적 의제로 설정했고, 합계 출산율이 1.08명을 기록한 2005년에는 ‘저출산·고령화사회 기본법’을 제정하기도 했다. 2006년에 들어서는 처음으로 ‘저출산·고령사회 기본 계획’을 수립하고 5년마다 계획을 갱신해 대응하고 있다.
22일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자료를 보면 2006년 2조 1,445억 원을 시작으로 1차 기본계획 기간인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총 19조 8,926억 원이 저출산·고령화 대응 정책에 투입됐다. 2차 기본계획 기간(2011년~2015년)에는 1차 계획기간의 3배가 넘는 60조 5,789조원이 투입됐다. 3차 계획기간인 2016년부터 2020년에는 152조 8,658억 원이 투입됐고, 2021년 1년 동안만 46조 6,846억 원이 집행됐다. 2006년부터 15년간 총 280조 원의 예산이 저출산·고령화 대응에 투입된 것이다.
이처럼 많은 예산이 투입됐음에도 불구하고, 효과는 제한적이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예산이 투입되는 상황에서도 합계출산률은 계속 급락,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고, 급기야 지난해 OECD 평균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0.78명으로 하락했다.
막대한 예산과 15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에도 회복의 기미조차 보이고 있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경제활동인구 확충을 위한 경제·사회 시스템 구축이 미비한 상황에서 예산 집행에 급급하다보니 정책의 사각지대가 발생했고, 저출산의 핵심 요인들인 고용불안, 주거부담, 출산·육아부담, 교육경쟁 심화, 일·생활 조화 어려움 같은 핵심 난제를 근본적으로 해소하는 것에 실패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가 2020년 12월 발표한 ‘제4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에 담긴 ‘지난 15년간의 정책 평가’를 보면 임신·출산 및 아동 양육에 대한 사회적 책임 강화, 일·가정 양립을 위한 제도적 기반 구축, 저출산 원인에 대한 구조적 접근 시도 등을 성과로 평가했다. 그러나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족관련 공공지출 수준은 OECD 평균에 못 미치고, 현금 지원도 미흡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육아휴직을 쓸 수 없는 사각지대가 광범위하고, 특히 남성의 육아휴직 등 일·가정 제도 이용률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으로 지목됐다. 가사분담, 성평등 노동환경 등에 있어 사회적 인식 변화는 진행됐으나 실질적 행태변화나 제도화가 더디다는 점도 한계로 평가됐다.
저출산위원회는 지난해 12월 개최한 ‘인구구조 변화와 대응방안’ 회의에서 “280조원이라는 막대한 예산 투입에도 불구하고, 그간 인구정책의 효과가 제한적이었다”고 평가하면서 “저출산 대응과 관련없는 사업들이 저출산 예산으로 분류되어 있어, 저출산 예산 규모가 부정확한 측면도 없지 않다”고 설명한 바 있다.
부처별 성과 내기식의 정책사업, 현금성 정책만으로는 한계가 크다는 지적도 많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 재구조화 연구’(2018년) 보고서에서는 “정책수단의 성격과 다양성이 충분히 고려돼 정책 간 균형과 소관 부처들 간 조율이 잘 이뤄지고 있는지 불확실”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인구학자인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저출산 현상의 배경이 되는 현실은 복잡다단한데 정치권이나 언론에서는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나 대책을 주문한 것이 문제”라고 짚었다. 하나의 예시로, 조 교수는 서울 쏠림 현상을 저출산 원인으로 꼽았다. 지역균형 발전을 위해 지방 일자리 정책을 짜면서 제조업을 강화하겠다고 하면, 부모나 자녀세대 모두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일자리 정책을 저출산 대책 관점에서, 장기적인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청년세대들이 실제 결혼과 출산을 고민할 시점의 상황에 대비해 정책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바로 성과가 안 나오더라도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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