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남북’ 아닌 ‘남남’ 독자노선 걷나... 김여정 ‘대한민국’ 표현 사용

- 통상적으로 북한이 사용하던 ‘남조선’ 아닌 대한민국으로 언급
- 태영호 “통일해야 할 같은 ‘민족’ 단위로 바라보다 다른 ‘국가’로 관계 변경한 듯”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연이틀 내놓은 담화에서 우리나라를 통상적인 표현인 ‘남조선’이 아닌 ‘대한민국’으로 언급하면서 이제 북한이 특수관계로 한국을 바라보는 것이 아닌 일본, 중국, 미국처럼 국가 대 국가의 개념으로 바라보는 ‘두 개의 조선’ 전략을 본격화 하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이어지고 있다.


▲ 출처 : 연합뉴스

김 부부장은 10∼11일 발표한 두 건의 담화에서 미 공군의 정찰 활동을 비난하는 한편 정당성을 주장한 남측을 향해서도 날을 벼리며 '대한민국'을 언급했다. 지난 10일 담화에서는 "《대한민국》의 합동참모본부", "《대한민국》족속" 등 표현을, 11일 새벽 담화에서는 "《대한민국》의 군부"라는 문구를 썼다. 북한 매체는 강조의 의미를 담는 용도인 '겹화살괄호'(《》)를 사용해 특정한 의도를 담은 표현임을 시사했다.

'대한민국' 또는 '한국'은 그동안 김 부부장의 담화에서는 물론 그밖의 북한 주요 매체나 공식 문건에서 사실상 사용하지 않은 표현이다. 북한은 그간 남측을 보통 '남조선' 또는 비난할 경우 '남조선 괴뢰' 등으로 지칭해왔다.

이는 우리가 북한을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잠정적인 특수관계 대상'으로 규정하듯 북한도 남측을 '같은 민족' 또는 '통일의 대상'으로 보는 관점이 반영된 것이었다. 하지만 김 부부장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위임'을 받아 발표한 담화에서 직접 대한민국 표현을 사용하면서 북한이 이제 남측을 '별개의 국가'로 보겠다는 입장을 공식화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북한 외교관 출신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은 이와 관련해 자신의 SNS에 “북한이 남북관계를 민족에서 국가 간 관계로 변경시키려는 것이 아닌지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김씨 남매에게 할아버지, 아버지도 지켜온 ‘남북 특수관계’ 대원칙이 손자대에서 ‘국가 간 관계’로 변경하려는 것인지 공개질의 해야한다”고 말했다.

이어 “북한이 남북관계를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특수관계’가 아닌 국가관계로 변경하려 한다면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가 채택된 이후 30여년간 유지되어온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관계가 근본적으로 심각한 상황”이라며 “우리도 그에 대응한 입법, 제도적 대응 준비를 해야한다”고 조언했다.

북한이 앞서 지난 2021년 8차 당대회에서 당규약 개정을 통해 '민족해방민주주의 혁명' 언급을 삭제한 것을 두고도 정세현 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등 전문가들 사이에서 같은 맥락의 해석이 나왔다. 북한이 '남한 혁명통일론'을 포기하고 남북을 별개의 국가로 보려 한다는 것이다.

북한은 1970년대만 해도 '두 개의 조선' 논리는 '미제의 책동'이라며 배척해 왔다. 당시 김일성 주석의 교시에는 "일본 군국주의자들은 남조선을 저들의 상품시장으로, 식민지로 만들려는 목적 밑에 미제의 '두 개 조선' 정책에 적극 추종하고 있다"는 내용이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이 논리는 1991년 유엔 동시 가입을 계기로 사실상 무너진다.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체결을 통해 대외적으로는 두 국가지만 대내적으로는 통일을 지향하는 한 국가인 '특수관계'를 성립시켰지만, 지난 30년간 남북 간의 정치·경제적 괴리가 점차 커지면서 '하나의 국가' 논리는 점차 힘을 잃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김 부부장의 최근 담화만으로는 북한이 '두 개의 국가' 전략을 정말로 공식화했는지 확신하기 힘들다는 지적도 있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자신의 SNS서 "저게 그냥 비틀기인지 아니면 정말 그런 단어를 새로운 표현으로 쓰는 건지는 반복인가 아닌가가 관건"이라며 "저게 일회성이라면 그냥 김 부부장이 한 번 비꼬아본 것"이라며 예단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통일부 역시 김 부부장의 발언이 '전례가 없는 것'이라면서도 "예단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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