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의료 종사자 폭행 빈발, 현행법으론 보호 한계 명확
장소·상황 제한된 법 적용 탓에 '맞으려면 응급실로 가라' 자조
안철수 의원, 응급의료법 개정 추진해 보호 범위 확대 나서
최근 발생한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 폭행 사건을 계기로 응급의료 현장에서 의료진을 보호하는 법적 장치가 매우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현행 응급의료법이 응급의료 종사자 폭행 사건에서 실질적으로 의료진을 보호하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뚜렷하다는 비판이다.
지난 1월 아주대병원에서 환자 보호자가 외상외과 전문의인 A교수에게 폭력을 행사한 사건은 검찰에 의해 '단순 폭행'으로 분류되어 벌금형 약식기소로 종결됐다. 피해자인 A교수가 응급의료법 위반 혐의로 처벌해달라고 호소했지만, 검찰은 해당 사안이 법 적용 대상이 아니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현행 응급의료법이 '응급실 내 진료행위'만을 보호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어 응급실 밖에서 발생한 폭행은 응급의료법 적용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현행 응급의료법 제2조는 응급의료의 범위를 '응급환자를 위한 상담, 구조, 이송, 응급처치 및 진료' 등으로 정의하고 있다. 하지만 법적 처벌의 근거가 되는 제12조에는 '상담'이 포함되지 않아 보호자가 의료진의 상담 중 폭력을 행사해도 응급의료 방해 행위로 규정할 수 없다. 장소 역시 응급실로 한정돼 응급실 외부의 복도나 보호자 대기실에서 폭행 사건이 발생하면 응급의료법 적용이 어렵다.
이러한 법의 허점 때문에 응급의료 현장에선 "차라리 폭행을 당하더라도 응급실 내부로 도망가서 맞으라"는 자조 섞인 말이 나올 정도다. 수도권 대학병원 응급의학과 B 교수는 "몇 년 전에도 환자를 이동시키는 중 복도에서 벌어진 폭행 사건이 응급의료법 적용을 받지 못한 사례가 있었다"며, "그 이후 의료진 사이에서 폭행 위협을 느끼면 무조건 응급실 문턱 안으로 들어가라는 농담 섞인 이야기가 오갔다"고 밝혔다.
서울권 대학병원의 응급의학과 C 교수 또한 "전공의들에게 폭행 위협을 느끼면 응급실 안으로 뛰어 들어와서 맞으라고 지시했던 적도 있었다"면서 "현장에선 웃지 못할 이야기지만 현실이 이렇다"고 씁쓸함을 나타냈다.
아주대병원 사건 당사자인 A교수는 법원이 이번 사건을 단순 폭행죄로 마무리 짓는 것을 멈추고 정식 재판으로 사건을 심도 있게 다뤄줄 것을 요구했다. 그는 "권역외상센터처럼 응급의료기관으로 지정된 장소에서조차 응급의료법 적용이 어렵다면, 앞으로 의료진은 가해자에게 '때릴 거면 응급실로 가서 때리라'고 부탁이라도 해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이처럼 문제의 심각성이 알려지자, 정치권에서도 법 개정을 통한 응급의료 종사자 보호 강화 움직임이 본격화됐다. 의사 출신인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지난 13일 '응급의료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에는 응급의료 조치 방해 행위의 정의를 확대해 의료진의 상담 업무까지 포함시키고, 처벌 범위를 응급실 외부 공간까지 넓히는 내용이 담겼다. 또한 종사자에게 상해를 입히지 않은 단순 폭행에 대해서도 최대 5년 이하의 징역형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적용하는 강력한 처벌 조항도 추가됐다.
안 의원은 개정안 발의 이유로 "아주대병원 사건처럼 응급의료 현장의 폭력 사건이 단순 폭행죄로 처리되는 현실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며 "현장 실정에 맞게 보호 범위를 확대하고 처벌 수위를 강화해 응급의료가 안정적으로 이뤄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개정안 발의를 접한 A교수는 "이 법안이 통과돼 응급의료 현장이 조금 더 안전한 곳으로 변화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의료진뿐 아니라 간호조무사, 보안요원, 원무과 직원 등 응급의료 현장을 지키는 모든 사람이 법적 보호를 받아야 한다"며, "보안요원에 대한 폭력 대응 권한과 면책 규정까지 마련되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더불어 의료기관의 폭력 예방 및 대응 매뉴얼 준수를 의료기관 평가 기준에 포함하는 등 제도적인 보완이 병행돼야 한다고도 제안했다. A교수는 "의료진 보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면서 "병원에서 벌어지는 폭력 사건이 단순한 민원이 아니라 명백한 범죄라는 인식이 확산되도록 적극적인 캠페인과 홍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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