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원 “태아 심박동 멈춘 뒤 뒤늦게 산모 상태 살펴”
- 유가족 “한 마디 사과조차 없었다”
분만을 유도하던 중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태아가 사망한 것에 대해 법원이 업무상과실치사를 인정한 1심 판결에 이어 2심에서도 원심을 유지해 벌금형을 선고했다.
19일 인천지법 형사항소4부(김용중 부장판사)에 따르면 고위험군 산모의 분만을 유도하던 중 제왕절개를 제때 하지 않아 태아를 숨지게 해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산부인과 의사 A(55)씨가 최근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벌금 2,000만 원을 선고받았다.
A씨는 지난 2016년 11월26일 오전 6시14분쯤 인천시 한 산부인과에서 산모 B씨의 분만을 돕던 중 태아의 심장박동수가 떨어지는 상황에서 제대로 조치하지 않아 태아를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B씨는 사건 발생 전날 오후 양수가 흐르는 상태로 산부인과를 찾았다가 고위험군 산모로 분류됐고, 유도 분만을 촉진하는 옥시토신을 투여받았다. 옥시토신을 맞은 산모의 경우 의료진이 자궁 과다수축이나 태아의 심장박동 변화 등을 세심하게 관찰해야 하는데, 태아의 심박동 수가 떨어지는 응급 상황이 생기면 산모에게 산소를 공급하거나 응급 제왕절개술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건 당일 당직의로 근무한 A씨는 오전 1시30분부터 B씨의 자궁수축 빈도와 압력을 측정하지 않다가 같은 날 오전 5시쯤 간호조무사로부터 “아기가 잘 안 내려오고 산모가 너무 힘들어해 지쳤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러나 A씨는 “분만 2기 시점으로부터 2시간이 지나지 않았다”며 분만실에 가지 않았고, 대신 간호조무사에게 “30분 동안 힘주기를 더 하면서 그냥 지켜보라”고 지시했다.
이후 A씨가 30분 뒤 분만실에 갔을 땐 전자 태아 감시장치 모니터에 나타난 태아 심장박동 수가 이미 크게 떨어져 ‘태아곤란증’이 의심되는 상태였는데도 그는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 태아곤란증은 태아가 자궁 내에 있으면서 순환기능이 저하된 상태로, 조속한 원인 파악 후 응급 제왕 절개 등을 실시해야 하며 방치 시 태아가 사망에 이르거나 분만하더라도 뇌성마비 등의 후유증이 생길 수 있다. 그만큼 빠른 분만과 진단이 중요하다.
A씨는 오전 6시5분쯤 간호조무사로부터 “태아 심장박동이 없다”는 긴급호출을 받고서야 분만실에 다시 갔고, ‘흡입분만’으로 태아를 자궁 밖으로 꺼내 심폐소생술을 했으나 살리지 못했다.
영안실 앞에서 아이와 찍은 처음이자 마지막 사진을 보여준 남편 정씨는 “저희가 계속 상태가 이상하다, 아이가 너무 나오지 않는다 등 지속적으로 상황을 알렸는데도 조치가 없었다”며 “조금만 더 조치가 빨랐더라면 그렇게 허망하게 아이를 떠나보내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눈물을 글썽였다.
1심 법원은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 감정 결과를 토대로 “필요한 조치를 소홀히 한 A씨의 업무상 과실뿐 아니라 그 과실과 피해자 사망 사이에 인과 관계도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이에 A씨는 “업무상 과실이 없다”고 주장했고, 검찰은 “1심이 선고한 벌금 2,000만 원은 너무 가볍다”며 각각 항소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은 태아곤란증이 의심스러운 상황에서도 30분 넘게 지나도록 (태아 상태를) 자세히 관찰하지 않았고 태아의 심장박동이 멈추고 나서야 살펴본 것으로 보인다”며 “1심의 판단은 정당하다”고 설명했다. 또 “1심의 형이 너무 가벼워 부당하다고 할 수도 없다”며 검찰의 항소도 기각했다.
A씨의 유가족은 “유죄가 선고된 것만으로도 감사하지만, 한 아이가 사망했는데 벌금 2,000만 원형은 너무나도 적은 것 같다”면서 “1심 당시 피고 변호인 측에서 ‘2,000만 원 정도면 보험 처리도 되고 괜찮은 정도여서 민사 소송에 패소해도 항소하지 않았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한 것을 들었다. 수년이 흘러 슬픔은 조금 무뎌졌지만 분노만은 여전히 남아있다”고 말했다.
이어 “진심 어린 사과 한 마디만 있었어도 형사 소송까지 제기하진 않았을 것”이라며 “개인이 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 저희와 같은 피해자가 더 이상 없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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