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 내 수술 받아야 하는 아이, 1년 기다려야 한다... 소청과 현실

- 소아과 의사 부족에 부모들 발만 동동
- 어린이 환자, 국립대 진료 대기일 5년 사이에 9.7일→16.5일 2배가까이 늘어

경기도에 사는 이모 씨(32)는 아들 김모 군(18개월)을 동네 소아과의원에 데려갔다 ‘유아사시’의심 판정을 받았다. 이에 의사는 2돌이 되기 전 수술할 것을 권고했고 큰 병원에 가보라며 진료의뢰서도 작성해줬다. 그러나 이모 씨는 서울 시내 주요 대학병원을 찾았으나 “소아안과 담당 교수 예약은 1년 이상 꽉 찬 상황”이라는 답을 받고 절망에 빠졌다.



김 군처럼 아픈 아기가 대학병원에 진료를 접수한 뒤 첫 외래 진료를 받기까지 걸린 기간(진료대기일수)이 5년만에 70%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11일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일이 전국 국립대병원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동아일보가 분석한 결과 전국 15개 주요 국립대 소아청소년과의 평균 진료대기일수는 지난해 16.5일이었다. 2017년 9.7일에 비해 5년사이 2배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의료계에선 중소 규모의 2차 의료기관(종합병원)이 만성적으로 시달리는 의료진 부족과 낮은 수익성을 이유로 소청과 진료량을 줄인 것이 주된 원인이라고 보고 있다. 부산대병원 관계자는 “최근 인근 중소병원 중 소청과 진료를 줄이거나 없애는 곳이 늘어나면서 지역 내 규모가 가장 큰 우리 병원으로 환자가 몰리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부산대병원은 이 기간 소청과 대기일수가 3배(11.6→ 34.5일)로 늘어 증가폭이 가장 컸다.

게다가 앞으로는 더욱 전공의 지원 급감과 전문의 유출 현상이 뚜렷해져 소청과의 붕괴로까지 이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인천의 상급종합병원인 가천대 길병원은 지난해 말 소아청소년과(소청과) 입원 병동 운영을 2월 말까지 중단한다고 선언했다. 당시 길병원 소청과는 “전공의(레지던트) 정원이 12명인데, 이 중 근무가 가능한 의사가 1명 뿐”이라며 도저히 운영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소청과 전공의는 주로 입원 환자를 돌보고 야간 당직을 통해 응급환자를 담당하게 된다. 이 때문에 전공의가 부족해지면 입원, 응급환자 진료 등 전체적으로 문제가 발생한다. 최근 강남세브란스병원, 이대목동병원 등 서울 소재 상급종합병원 중에서도 소청과 야간, 응급실 진료를 정상적으로 보지 못하고 있는 곳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소청과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새로운 전공의 모집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의대를 갓 졸업한 졸업생들은 1년간 여러 과에서 ‘인턴’을 거친 후 전공 과목을 선택해 전공의가 된다. 2018년까지만 해도 소청과는 정원보다 지원자가 더 많았다.

그러나 최근 5년 사이 지원자가 급감했다. 올 상반기(1월~6월) 207명의 정원 중 33명 밖에 지원하지 않았고, 소청과 전공의 모집 공고를 낸 10개의 국립대병원 중 지원자가 1명도 없는 곳은 7곳이었다.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는 2년 뒤에는 전국 병원의 소청과 전공의 자리 5곳 중 4곳이 공석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소청과가 전공의들 사이에서 인기가 없는 이유는 단순하다. 다른 전공에 비해 돈을 벌지 못하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소청과 전문의의 평균 연봉은 1억 875만 원(2020년 기준)이었다. 전체 의사 평균(2억 3,070만 원)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여기에 초저출산 추세까지 맞물리면서 ‘사양 산업’이라는 꼬리표까지 붙었다. “소청과라는 과목 자체가 조만간 ‘붕괴’하고 말 것”이란 우려까지 나오는 이유다.

소청과학회 조사에 따르면 소청과 수련병원의 75%는 이미 부족한 전공의를 대신해 전문의가 야간 당직을 서고 있다. 최영준 고려대 안암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밤을 새우고 나면 최소한의 휴식이 필요하다. 교수가 당직을 서는 날이 늘수록 감당 가능한 외래 환자 수는 줄어든다”고 말했다.

병원들은 소청과 전문의를 지금보다 늘리긴 어렵다고 말한다. 한 비수도권 국립대병원 관계자는 “교수님들이 외래진료 1세션(3시간)당 50여 명의 환자를 보고 있지만, 소청과는 수가(酬價·병원에 지급되는 진료비)가 전 과목에서 최저 수준이라 의사를 더 뽑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소청과 근무를 포기하는 전문의가 늘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 소청과 전문의는 “지방 중소병원들에선 격무를 견디다 못해 ‘소청과 전문의’ 타이틀을 버리고 요양병원 등으로 이직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은 “병원 사정 때문에 아픈 어린이들이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서는 안 된다. 전향적인 필수의료 지원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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