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천원짜리 진료하다 수천만원짜리 소송... “이러다 병원도 노키즈존”

- 이비인후과의사회, 소송 위험 대비 부족한 수가보상에 ‘진료기피 현상’ 극심 우려
- “5~10배 소아 가산제도 실시하고 과감한 결정 내려야”
- 코로나19 수렁에 빠진 이비인후과... “정부 차원의 정책적 배려 절실”

필수의료 중 소청과 진료 기피 현상은 이비인후과에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진료과정에서 성인 환자보다 고된 어린이 환자들을 진료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에 합당한 보상은 없고 높은 소송 부담까지 떠안고 있기 때문이다. 요식업계를 중심으로 어린이를 동반한 고객은 업장의 출입이 안 된다는 ‘노키즈존’이 동네 의원에도 등장할지 모른다는 이야기마저 나오고 있다.


▲ 출처 : 뉴시스

지난 5일 대한이비인후과의사회 황찬호 회장은 서울 소곡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소아 진료 현장은 부모와 아이도 힘들고 의사도 참 힘들다“라며 ”고된 소아 환자 진료 현장에 대한 지원이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이비인후과의사회에 따르면 6세 이하의 환자 15%는 편도 아데노이드 질환이나 중이염 같은 질환으로 이비인후과를 찾는 경우다. 그러나 최근 소아 환자 귀 내시경 검사를 진행하며 귀지를 제거하는 도중 출혈이 발생했다며 담당 의사에게 2000만 원 대의 민사 소송을 제기한 사례가 알려지면서 이비인후과에서 소아 진료를 기피하는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이에 대해 황 회장은 "진료 현장에서 보호자 기대 수준은 점점 높아지는데 아이들은 검사 중에 다칠 위험이 항상 있다. 이런 부담을 안고 진료하기에 내원일당 진료비는 낮고 진료시간은 성인 환자 2배 이상 소요된다"며 "부담이 과도하다 못해 의사들이 '소아 환자가 많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고 했다.

황 회장은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1만원도 되지 않은 돈을 받으며 진료하다 수천만원대 소송을 당하는 입장에서 힘들다"며 "소아 진료 어려움을 더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요식업계에서) '노키즈존'이 등장한 것처럼 의사가 소아 환자를 반기지 않는 안타까운 현실이 가까이 오고 있다"고 했다.

따라서 소아 진료에 대한 가산 수가를 확대하고 현실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황 회장은 "(소아 진료 가산제로)최소 5배에서 10배는 올려야 한다. 정말 전향적인 결정이 필요한 시기다. 분만 수가 더 올려야 한다는 이야기가 30년 전에 나왔다. 그때 10배 올렸다면 분만 의료기관이 사라지고 인프라가 무너지는 사태까지 오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소아 진료 가산도 마찬가지다. 지금 10배 올리라는 주장이 황당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앞을 내다보지 않고 과감한 결정을 내리지 않으면 (소아 진료도) 분만 인프라 붕괴와 비슷한 전철을 밟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코로나19로 직격타를 맞은 이비인후과가 그 피해를 복구하지 못해 존폐 위기에 몰리고 있다고도 했다. 최저 수준인 내원일당 진료비와 환자 수 급감이 겹치면서 수렁에서 좀처럼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비인후과의사회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21년 기준 이비인후과 요양급여비용은 지난 2012년보다 25.2% 증가하는 데 그쳤다. 마이너스를 기록한 소아청소년과를 제외하면 증가율이 가장 낮다. 지난 2012년 의원급 의료기관 진료과별 전체 매출이 이비인후과(8,902억 원)과 비슷했던 안과(8,848억 원) 총요양급여비용 증가율은 141.6%에 달한다.

내원일당 보험급여 평균 진료비는 지난 2021년 기준 2만 6,070원으로 소아청소년과(1만7,611원)과 가정의학과(2만637원) 다음으로 적다. 15개 진료과 평균 3만 6,599원을 밑돈다.

여기에 의원급 의료기관당 보험급여 환자 수도 떨어졌다. 코로나19로 환자들이 호흡기진료 외래 진료를 피했기 때문이다. 2019년 하루 평균 87.9명이던 이비인후과 보험급여 환자 수는 2021년 56.2명으로 36% 감소했다.

이비인후과의사회는 코로나19로 경영 위기를 맞은 이비인후과가 "몰락하지 않고 감염병 대응 첨병 역할"을 하려면 정책적 지원과 배려가 필수적이라고 했다. 비강·구강·외이도 강처치 수가를 신설하고 감염관리 필수의료과로서 이비인후과 인프라 유지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 회장은 "이비인후과는 일차 의료기관 진료과 가운데서도 보험급여 매출 의존도가 가장 높다. 비급여 매출까지 따지면 사실상 안과의 25% 수준에 불과할 것"이라면서 "코로나19 상황이 안정화되고 있지만 이비인후과를 방문하는 환자는 점점 줄고 있다. 코로나19 극복에 앞장선 이비인후과가 앞으로도 상기도 감염병 대응 첨병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정책적 지원이 절실하다"고 했다.

황 회장은 "강처치는 이비인후과 외래에서 흔하게 이뤄지는 행위인데도 수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며 "강처치 수가 신설 논의가 꾸준했고 규정도 만들어졌지만 건강정책임의위원회 통과를 못 하고 있다. 이를 하루빨리 통과시켜 대국민 감염관리 필수과로서 이비인후과 의원급 의료기관 인프라를 유지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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