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차별적 묻지마 칼부림 잇따르는 가운데 맞서다 상해·폭행 유죄 판결 받은 사례 재조명
- ‘죽기와 감옥가기 중 고르라는 것이냐’ 분노... 전문가 “정당방위, 지나치게 보수적으로 적용”
최근 국내에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한 이른바 ‘묻지마 칼부림’ 범죄가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온라인에선 ‘정당방위’에 관련해 논란이 일고 있다. 흉기를 휘두르는 상대를 제압하는 과정에서 자칫 잘못하다간 정당방위가 아닌 폭행·상해 유죄 판결을 받은 사례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재조명되면서 사법부를 향한 분노도 터져나오고 있다. 현행 정당방위 인정 요건을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전문가의 지적이다.
4일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과거 흉기 공격 범죄를 대응하다 피해자가 정당방위를 인정 받지 못하고 처벌받은 사례들이 재조명됐다.
지난 2020년 4월 인천의 한 공원에서 흉기를 휘두르며 덤비는 친구를 맨손으로 때려 다치게 했다가 재판을 받은 40대 남성 A씨의 사례도 소개됐다. 당시 A씨는 함께 술을 마시다 친구와 말다툼을 했고, 친구가 격분해 흉기를 들고 A씨의 팔을 찔렀다. 이후 A씨가 친구의 손을 쳐 흉기를 해제시키고, 친구를 폭행해 전치 5주의 상해를 입혔다.
상해죄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는 “친구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전치 6주의 상해를 입었다”며 정당 방위를 주장했으나 법원이 이를 기각했다. 담당 판사는 “정당방위 주장이 어느정도 수긍이 간다”면서도 “상대가 흉기를 놓친 이후에도 폭행을 가했고, 그 강도가 과잉방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다만 법원은 여러 정황을 고려해 A씨의 형량은 면제하기로 했다.
지난 달에도 경기 의정부에서 함께 동거하던 남성이 흉기로 위협하자 이를 빼앗아 찌른 여성이 구속되기도 했다. 의정부 경찰에 따르면 40대 여성 B씨는 동거하던 남성과 말다툼을 벌이다 남성이 주방용 칼을 집어들고 위협하자, 격분해 이 칼을 빼앗아 남성의 가슴을 한 차례 찔렀다. 남성은 생명의 지장은 없었으며 경찰은 B씨를 살인미수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2014년 3월 강원도 원주시에서는 더 기가막힌 일이 벌어졌다. 집에 들어온 도둑을 제압하려다 격투 끝에 사망에 이르게한 20대 C씨가 상해치사죄로 징역 1년 6개월, 집행유예 3년의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 사건은 흉기 범죄에 대한 대항은 아니었으나 정당 방위 요건을 까다롭게 적용하는 사법부의 기조를 여실없이 보여줘 사회적으로 큰 파장이 일었다.
당시 법원은 C씨의 첫 번째 폭행에 대해서만 정당방위를 인정했다. 이후 폭행에 대해서는 절도범이 저항하지 않고 도주하려 했음에도 폭행이 지속됐다며 “방위 행위로서의 한도를 넘어섰다”고 판결했다. 1심에서 폭행죄로 기소됐던 C씨는 이후 절도범이 치료를 받던 도중 사망하면서 상해치사로 공소장이 변경됐고, 대법원까지 가는 법정싸움 끝에 “원심판결에 정당방위, 과잉방위 등에 관한 법리 오해의 위법이 없다”며 형을 확정했다.
형법 제21조에 따르면 ‘정당방위’는 ①현재의 부당한 침해가 있고 ②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을 방어하기 위해 한 행위여야 하고 ③ 방위 행위에 상당한 이유가 있어야 인정된다.
예컨대 누군가 흉기를 들고 위협할 경우 범인의 팔을 쳐 흉기를 떨어뜨리는 행위는 정당방위로 인정되지만, 이후 범인이 맨몸으로 추가 공격을 할 상황을 대비해 추가 폭행을 가할 경우는 정당방위로 인정되지 않는다. 흉기를 제거함으로써 ‘현재의 부당한 침해’ 위험이 사라졌다고 보기 때문이다. 즉 가해자의 흉기를 떨어뜨렸다면 공격을 멈춰야하며, 다시 흉기를 집어든 이후에 행하는 공격만 정당방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범죄 상황에 대처했다가 정당방위를 인정받지 못하는 사례들이 반복되자 온라인상에선 “그냥 죽으라는 말이냐”는 반응이 속출하고 있다.
네티즌들은 “흉기 들고 난동부리는 사람한테 흉기가 몇개가 있을 줄 알고 정당방위 요건에 맞게 적당히 제압하나”, “도망 밖엔 할 수 있는 게 없는데 칼 맞고 도망이나 제대로 갈 수 있겠나”, “누가 칼 들고 덤비면 죽기 아니면 감옥 가기 중에 택하면 된다” 등 현행 정당방위 인정 요건에 불만을 표했다. “판사에게는 판결에 불만만 터뜨려도 형량을 늘리면서, 일반 시민은 칼에 찔려도 최소한의 대응만 하란 거냐”같은 반응도 있었다.
승재현 형사법무정책연구원 박사는 “현재 법정에서 정당방위는 공격에 대한 방어에 초점을 둬 보수적으로 적용된다. 한국이 비교적 안전한 사회였을 때 만들어진 법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승 박사는 “지금은 세상이 달라졌다. 길을 걷다 갑자기 흉기에 찔릴 수도 있는 상황”이라며 “변화된 상황에 맞춰 정당방위 요건에 대한 이론적 검토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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