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출신 독립운동가이자 중국의 음악가로 활동한 정율성(1914~1976)의 기념 사업이 친북과 친공산 행적으로 논란에 휩싸인 가운데 1951년 1·4 후퇴 때 중공군과 함께 서울에 입성해 조선궁정악보 등 조선 왕실 관련 유물을 중국으로 가져간 것으로 확인됐다.
최근 광주시 등에서 추진하고 있는 음악가 정율성의 기념사업은 중국 인민해방군 행진곡과 북한 조선인민군 행진곡을 작곡하는 등 그의 친북, 친공산 행적이 드러나며 논란이 일고 있다. 호남의 일부 시민단체와 보훈 유가족들은 “단순 부역자도 아닌 북한의 적화통일에 최전선에 섰던 사람을 거액의 세금을 들여 기념한다는 것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정체성을 부정하겠다는 것”이라며 사업 백지화를 요구하고 있다.
28일 정율성 관련 중국 저서와 논문에 따르면 정율성은 지난 1950년 12월 중국에서 중화인민지원군 창작조와 함께 북한으로 들어온 뒤 이듬해 1월 1·4 후퇴 때 서울로 향했다. 1·4 후퇴는 중공군이 1950년 11월 국군과 유엔군에 의해 패전 위기에 몰린 북한을 지원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전쟁에 개입해 다시 서울 등을 내준 후퇴이다. 당시 정율성은 중국에 귀하한 상태는 아니었지만 그의 중국인 아네 딩쉐쑹이 중국 총리 저우언라이의 양녀였던 만큼 중국 내에서도 유력인사로 꼽히던 시기였다.
이후 정율성은 서울에 머물며 사대문 내 주요 시설, 고위 관료 사택 등을 조사하고 다니다 ‘조선궁정악보’을 입수했다. 광주문화재단 측의 자료에 따르면 그가 전쟁 중에 챙겨 북한, 중국으로 가져간 궁정악보는 종묘제례악과 연례악 등 2부 18집에 달한다. 그는 이 궁정악보를 중국으로 가져갔으며 그가 사망한 뒤 그의 아내 딩쉐쑹이 한중 수교 이후 1996년 한국 정부에 반환했다. 군사편찬연구소 관계자도 “중공군이 서울에 머물렀던 두 달여동안 대규모 인명 피해 뿐만 아니라 문화재와 유물 약탈, 파괴 행위도 비일비재했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정율성이 항일 운동 전개에도 불구하고 국가유공자 등으로 공식적으로 인정받지 못한 것도 이 같은 행적이 문제가 됐던 것으로 보인다. 국가보훈부 관계자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 방중 기간 공개 언급한 정율성이 당시 국가유공자 서훈을 받지 못한 것도 그가 6·25 전쟁 당시 우리를 침략한 북·중공군의 핵심 인사였고, 문화재 약탈 행위까지 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 가운데 호남대안포럼과 전국학생수호연합 광주지부는 이날 광주 정율성로(路)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우리 국민을 학살한 북한 응원대장 정율성을 기념하는 공원 조성에 결사 반대한다”며 “서재필 박사 등 수많은 호남 출신의 국가유공자를 두고 침략자를 기념하는 것은 호국 영령에 대한 조롱”이라고 맹렬히 비판했다.
그러면서 “5·18때도 광주시민은 ‘북괴는 오판말라’라며 자유민주주의를 외쳤다”면서 “그런데 강기정 광주 시장은 북괴의 부역자를 기념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2010년 북한의 연평도 포격으로 전사한 고 서정우 하사의 어머니와 전몰군경유족회 등도 28일 광주 현충탑에서 정율성 사업 철회를 집회를 열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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