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주 찾은 전우원씨, 5·18 유족·피해자 대면해 사과
- “나도 추악한 범죄자, 더 일찍 사죄 못해 진심으로 죄송하다” 눈물
고(故) 전두환 전 대통령의 손자인 전우원씨가 31일 광주에서 5·18 유족 및 피해자를 대면해 고개숙여 사과했다. 전 전 대통령을 포함해 전씨 일가가 5·18 민주화운동 당시의 학살에 대해 사과한 것은 처음있는 일이다.
전 씨는 “저같이 추악한 죄인에게 소중한 기회를 주신 모든 분들게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렇게 늦게 찾아뵙게 돼서, 더 일찍 사죄의 말씀을 드리지 못해 진심으로 죄송하다”고 거듭 사과했다.
이어 “우리나라는 정말 오랫동안 아픔의 역사를 겪어왔다”며 “일제강점기부터 군부독재까지 너무나도 많은 희생과 아픔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제 할아버지 전두환씨는 민주주의의 발전을 도모하지 못하고 오히려 민주주의가 역으로 흐르게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양의 탈을 쓴 늑대들 사이에서 평생 자라왔고, 저 자신도 비열한 늑대처럼 살아왔다"며 "이제는 제가 얼마나 큰 죄인인지 알게 됐다. 제가 의로워서가 아니라 죄책감이 너무 커서 이런 행동(사죄)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 씨는 “정말 군부독재의 두려움 속에서 그것을 이겨내고 용기로 군부독재와 맞섰던 광주 시민 여러분들은 영웅”이라며 “정말 우리나라의 빛이고 소금이신 모든 분을 오히려 더 고통에 있게 하고 그 아픔을 더 깊에 해 정말 죄송하다”고 계속해서 사과의 말을 전했다.
이어 “제 가족들뿐만 아니라 저 또한 너무 추악한 죄인이다. 정말 제가 이 자리에 있는 것 또한 죄악이라고 생각하는데, 호히려 광주시민 여러분들께서 저를 따뜻한 마음으로 받아주시고, 저를 사람으로 봐주셔서 정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광주에 오고 나서 따듯하게 대해주신 모든 분에게 감사드리며 정말 죽어 마땅한 제게 이렇게 사죄를 드릴 기회를 주셔서 감사드린다”고 말하며 울먹이기도 했다. 전씨는 5·18 당시 가족을 잃은 오월 어머니들 앞에 서 무릎을 꿇고 큰 절을 하기도 했다.
전씨의 진심어린 사죄에 오월 어머니들도 울먹이며 “용기를 내어줘서 고맙다”며 전씨를 안아주거나 손을 꼭 붙잡아주며 전씨를 위로하기도 했다.
문재학 열사의 어머니 김길자 씨는 "이런 결정을 하기까지 얼마나 고통이 컸을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아프다. 광주를 제2의 고향처럼 생각해 달라"며 "얽힌 실타래를 풀어가는 심정으로 5·18 진실을 밝혀서 화해의 길로 나아가는 데에 우리도 돕겠다"고 눈물을 훔쳤다.
앞서 전씨는 전날 새벽 마약 투약 혐의로 경찰에 체포돼 조사를 받은 뒤 광주에 도착했다. 전날 오후 전 씨를 보러 몰려든 광주 시민들은 전 씨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면서 응원을 전하기도 했다. "고마워요 전우원씨", "전우원 파이팅", "여기 와줘서 고맙다. 마음이 조금 풀린다" 등의 반응이 나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전씨는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기념공원 민주묘지를 방문했다. 그는 방명록에 "저라는 어둠을 빛으로 밝혀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민주주의의 진정한 아버지는 여기에 묻혀계신 모든 분들이십니다"라고 썼다.
5·18 희생자들의 묘소들을 참배하던 전씨는 입고 있던 검은색 코트를 벗어 묘비들을 닦는 모습을 보였다. 주변에서 "수건이 있으니 옷으로 하지(닦지) 말라"는 말도 들려왔으나 전씨는 말없이 코트와 손으로 묘비들을 닦았다. 이후 전씨는 '묘비를 닦으실 때의 심정은 어땠는가'라는 취재진 질문에 "제가 입던 옷 따위로 닦지 않고, 더 좋은 것으로 닦아드리고 싶었다"고 밝혔다.
전씨는 민주묘지 참배 일정 종료 후 "너무 늦게 와서 죄송하다. 이렇게 와 뵈니 제가 뚜렷이 보이고 죄송한 마음 뿐"이라면서 "앞으로도 이게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고 좋은 모습 보여드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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