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R&D, 주 64시간까지...지침 하나로 뚝딱?

-주 52시간 예외 ‘특별연장근로 업무 처리 지침’ 개정 착수
-시행규칙·지침 개정으로 손쉽게 예외 범위 넓혀

노동부가 1주에 최대 노동시간을 기존의 52시간에서 64시간까지 늘릴 수 있는 ‘특별연장근로 제도’의 적용 대상을 반도체 연구개발 분야 전반으로 확대하기로 결정하자 노동계가 사실상 주 52시간 상한제를 무력화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15일 고용노동부가 기업의 특별연장근로를 사용할 수 있는 사유들을 구체적으로 정한 ‘특별연장근로 업무 처리 지침’ 개정 작업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지난달 21일 산업통상자원부가 현재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연구 개발에 한정된 특별연장근로 적용 사유를 ‘반도체 연구개발’ 전반으로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던 것의 실무 절차가 시작된 것이다. 정부는 오는 9월까지 지침 개정 작업을 마치고, 지방노동청에 안내할 계획이다.

특별연장근로 제도란 재난 수습, 사람의 생명·안전 보호를 위한 긴급조치, 갑작스러운 시설 보수, 통상에 비해 업무량의 대폭 증가, 소재·부품·장비 연구 개발의 5가지의 특별한 경우에만 기업이 한시적으로 1주 최대 노동시간을 52시간에서 12시간 연장된 64시간으로 늘릴 수 있도록 허용한 제도이다.

이 중 연구 개발의 목적의 특별연장근로는 지난 2019년 일본이 수출을 막아 수급 대란이 발생한 ‘반도체 3개 소재’(고순도 불화수소·포토레지스트·플루오린 폴리이미드)와 대통령 직속 소부장경쟁력위원회가 승인하는 특정 연구개발사업을 하는 경우에만 허용해왔으나 노동부는 ‘반도체 연구개발 분야 가운데 산업통상자원부가 확인서를 발급하는 경우’ 한 가지도 더 신설할 예정이다. 반도체 연구개발 분야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정의하고 확인서를 어떤 기업에 대해 발급할지 등은 산업통상자원부와 협의 중이다.

노동계는 예외적으로만 적용되어야 할 특별연장근로 사유가 지속해서 점차 확대되고 있는 것에 강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특별연장근로 사유는 당초 재난 발생과 이를 수습하기 위한 경우로 엄격하게 제한되어 있었으나 적용 범위를 확대해달라는 경영계 요구에 2020년 노동부가 근로기준법 시행규칙을 개정해 2개의 사유를 추가한 것이다.

특별연장근로 사유가 확대된 후 특별연장근로 인가 건수는 2019년 908건에서 지난해 6477건으로 7배 이상 늘었다. 이번엔 시행규칙을 개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5가지 사유의 구체적인 기준을 정하는 노동부의 내부 지침을 변경해 연구개발 목적의 특별 연장근로 적용 범위를 넓힐 방침이다.

이에 대해 노동부 관계자는 연구개발의 사유로 특별연장근로를 신청한 경우가 2020년 5건, 2021년 14건에 불과했다고 설명하며 “제도 남용의 소지가 적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제도 활용 범위가 늘면 그만큼 기업의 수요도 늘 수도 있다는 지적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정훈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정책국장은 “지난 2019년 반도체 소재·부품·장비를 특별연장근로 사유로 넣겠다고 했을 때도 ‘저걸 계기로 제도 범위를 확장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심이 들었는데 우려가 사실이 됐다”면서 “웬만한 업종의 연구개발 분야가 다 있는데 이런 식으로 사유를 확대하면 사실상 주 52시간 노동시간 상한이 무력화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그는 특별연장근로 활용 사유를 시행 규칙과 지침이 아닌 법에 명시하고 엄격하게 규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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