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테네 등 주요 도시서 이틀째 항의 시위... 철도·지하철노조 24시간 파업
- 철도 시스템 현대화 지연 등 ‘예견된 참사’라는 지적도
그리스 중부에서 벌어진 열차 충돌로 인한 사망자가 현재까지 57명으로 늘어난 가운데 참사에 애도를 표하던 시민들의 슬픔이 점차 분노로 바뀌어 가고 있다.
비가 내리고 천둥이 치는 등 궃은 날씨에도 시위대는 헬레닉 트레인 본사부터 의회까지 가두행진을 벌이며 “이 범죄를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된다”는 구호를 외쳤다.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은 대부분 다수의 희생자와 비슷한 또래의 젊은이들이 주를 이뤘다.
시위에 참여한 시민 스트라스 난티스(21)는 “우리는 정부와 철도 회사가 그리스 철도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에 분노한다”고 말했다.
헬레닉 트레인은 사고 열차가 소속된 그리스의 주요 철도회사로 전신인 트레인OSE가 2017년 그리스 재정위기 당시 이를 견디지 못하고 추진한 민영화 계획에 따라 이탈리아 기업에 매각되며 생긴 기업이다. 난티스는 “모든 사람은 민영화가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하지만 인수한 이탈리아 회사는 철도의 현대화를 하겠다는 약속에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굉장히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시위는 전날부터 아테네를 비롯해 제2의 도시인 테살로니키, 사고 현장 인근의 라리사 등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고 있고, 일부 지역에서는 경찰과 시위대가 충돌해 최루탄이 발사되는 등의 혼란이 야기되기도 했다.
앞서 지난달 28일 자정 직전 350명을 태우고 아테네에서 테살로니키로 가던 여객 열차가 테살라로키에서 라리사로 향하던 화물열차와 정면으로 충돌했다. 이 두 열차는 같은 선로를 달리고 있었으며 서로의 존재도 모르고 있었다.
이번 사고로 인해 여객열차의 기관부를 포함한 1·2호차는 종잇장처럼 구겨졌고, 3호 객차는 탈선했다. 시신이 추가로 수습되면서 2일까지 사망자는 57명으로 늘어났다. 희생자 대다수는 황금연휴를 즐기고 귀향하던 20대 대학생들로 확인되면서 더욱 안타까움을 샀다. 특히나 사고로 피해가 컸던 2호차는 식당칸으로 사고 직전 학생들이 이곳에서 야식을 즐기며 시간을 보내다 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색 작업이 종료되더라도 정확한 희생자의 신원 파악에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소방당국은 “사고 초기 발생한 화재로 인해 1호 객차의 내부 온도가 섭씨 1,300도까지 올라가는 등 신원 파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리스 경찰은 이번 사고와 관련하여 여객열차를 잘못된 선로로 안내한 라리사 역장을 과실치사 혐의로 체포했다.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총리는 사고 현장을 방문해 "그리스 역사상 최악의 철도 참사"라며 "인간의 실수에 따른 비극적인 사고"라고 규정했다.
하지만 시민들의 분노는 역장 개인보다는 정부와 철도 회사를 향하고 있다. 역장의 오판도 잘못이지만 그보다는 역무원의 수동 조작에 의존하는 낙후된 설비를 개선하지 않은 정부와 철도 회사가 더 큰 책임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의대생인 니코스 사바는 "철도망은 낡고, 직원들은 박봉에 시달려 문제가 있어 보였다. 이건 시스템이 병들었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라며 라리사 역장이 모든 책임을 뒤집어써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라리사에서 개업한 의사인 코스타스 바르기오타스는 "용납할 수 없는 사고"라며 "우리는 철도 시스템이 문제라는 걸 30년 동안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코스타스 카라만리스 그리스 교통부 장관은 사고 직후에 사임했다. 카라만리스 장관은 "21세기에 맞지 않는 철도 시스템을 오랫동안 개선하지 못한 데 대해 책임을 지겠다"고 말했다.
민심이 들끓자 그리스 정부 대변인인 야니스 이코노무는 이날 그리스의 철도 사업이 "고질적인 공공부문 병폐"에 시달리고 있다고 인정했다. 영국 가디언은 그리스 정부가 철도 시스템 현대화 작업이 지연되고 있음을 공식적으로 처음 인정했다며 의미를 부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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