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인에게도 닥쳐오는 전쟁의 공포, 피난가는 벨고르드 주민들

- 우크라이나와 접경 도시 러시아 벨고르드, 지속적으로 공격받아
- 주민 “꽃과 이웃 가득한 도시, 이젠 아무것도 없어... 전쟁 반대 여론도 높아져”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격적으로 침공한 지난해 2월 이후 전쟁은 우크라이나 영토 내에서 펼쳐지며 우크라이나를 지옥으로 만들었다. 우크라이나 도시들에서는 연일 폭격과 마사일 공격을 받으며 수 많은 시민들이 전쟁의 공포속에 떨어야 했다. 하지만 이제 비단 우크라이나 국민에게만 느껴지는 감정이 아니게 됐다. 러시아 영토 내의 러시아인에게도 전쟁의 공포는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 벨고르드 시내에 박힌 포탄 ㅣ 출처 : 연합뉴스

5일 러시아 소식통에 따르면 지난 1일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러시아 서남부의 도시 벨고르드에 살고 있는 영어 교수 루슬란(27)은 최근 처음으로 뚜렷히 들리는 포격소리를 들었다. 전쟁이 시작된 이후 아주 먼 곳에서부터 작게 들리는 쿵쿵 소리는 들어왔지만 이번은 먼 곳에 떨어지는 포탄이라기엔 소리가 너무 컸다. 새벽 3시부터 시작된 포격은 아침까지 계속됐고, 때로는 집이 흔들리기도 했다. 결국 그는 집을 떠나 대피소로 향했다.

뉴욕타임즈는 3일 지난달 말부터 러시아의 국경도시를 향한 우크라이나의 공격이 거세지고 있어 약 4만 명이 살던 러시아 서부 벨고르드 셰베키노 마을은 사실상 새로운 전선이 형성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최근 러시아 국경 마을을 향한 드론과 미사일 공격이 이어지면서 러시아 주민들에게도 이제 전쟁의 공포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국경 너머 15개월 째 진행중인 전쟁과 한 발 떨어져 살아온 러시아인들도 언제든지 ‘난민’ 신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국경에서 약 10km 정도 떨어진 셰베키노 마을을 향한 공격이 계속해서 이어지자 벨고르드 주 당국은 주민 2500명을 우선적으로 국경에서 멀리 떨어진 체육관으로 피난시켰다. 일부 주민들도 자가용 등을 이용해 개별적으로 전쟁을 피해 피난길에 올랐다.

마을 주민 다리야(37)는 “셰베키노 마을은 멋지고 꽃이 많은, 이웃과 함께 지내는 이들로 가득한 곳”이라면서도 “지금은 고통과 죽음, 비참한 삶만 남았다”고 호소했다. 마을엔 이제 전기도, 대중교통도, 상점이나 주민까지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드론과 미사일 공격이 이어져 지하 방공 대피소로 몸을 피하는 일이 잦아져 일상 생활을 누리기도 어려워졌다.

이 지역에서 사업을 운영하던 올레그 역시 “우리는 지금 전환점을 마주하고 있다”며 “애초 전쟁에 반대하는 인원은 소수였으나 지난 나흘간의 포격으로 사람들이 마음을 바꾸고 있는 모양새”라고 말했다.

뉴욕타임즈는 쇼셜미디어에 올라온 영상과 목격자 증언을 통해 최근 반러 민병단체 두 곳의 공격으로 러시아 국경지대의 민간인 마을이 광범위하게 파괴됐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시민들은 피해 주민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키거나 성금을 모아 거처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해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며 우크라이나 전역에서 벌어진 일이 이제 러시아에서도 되풀이되고 있는 셈이다. 이 매체는 이런 변화가 “러시아 정치에 예측하기 어려운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주민들은 이런 공격 사실을 러시아 정부에서 조차 큰 관심을 보이지 않자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셰베키노는러시아다”(#ShebekinoIsRussia) 해시태그 운동을 벌이고 있다. 러시아 당국이 지난달 3일과 30일, 크렘린 궁이나 모스크바를 향한 드론 공격 시도에 대해선 대대적인 보도와 성명을 이어갔음에도 국경마을에 대한 공격에는 제대로 전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쟁 상황과 관련해 국영 언론이 전하는 보도 이상의 정보를 찾아보는 러시아인들은 4명 가운데 1명에 불과한 수준이다.

CNN도 3일 러시아 국경을 향한 우크라이나의 이런 공격 시도가 러시아 내부를 불안정하게 만들려는 의도로 보이고, 큰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평가했다. 우크라이나는 이번 공격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등 모호성을 유지하면서 자국 국방 조직 아래에 속해있는 러시아 시민들로 이뤄진 ‘러시아자원병부대’(Russian Volunteer Corps)와 ‘러시아해방부대’(the Freedom for Russia Legion) 등 민병 단체를 활용해 러시아 내부의 혼란과 불안을 일으키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방법은 지난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영토였던 크림반도를 강제로 병합할 때 우크라이나에 비슷한 수법을 사용했다.

뱌체슬라브 글라드코프 벨고르드 주지사는 지난달 31일 우크라이나가 지역 내 마을 두곳을 포격했고, 1일에도 셰비키노 지역 인근에 세차례 포격을 가하는 등 공격을 시작했고, 2일에는 차를 타고 가던 민간인 여성 2명과 3일에도 여성 2명이 우크라이나의 포격에 의해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러시아도 연일 우크라이나에 대한 보복성 공습을 이어가고 있다. 4일 민간인 주거지를 향한 러시아의 공습으로 중부 드니프로 지역에서 2살 여자 아이가 숨지고 22명이 다쳤다. 우크라이나의 어린이날이었던 1일엔 키이우 등에서 어린이를 포함한 3명이 숨지고 11명이 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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