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네 소아과 줄어들고 독감 유행까지 겹쳐 소아과 진료 대란
- 아침부터 대신 줄 서주는 ‘오픈런 알바’까지 등장
서울 송파구에서 생후 30개월 쌍둥이를 키우는 A씨(36)씨는 지난 16일 오전 8시 30분쯤 간밤에 동시에 열이 오른 아이들을 앞뒤로 안고 업고 동네 소아과로 향했다. 병원 문을 열기까지 30분 남았지만 번호표를 뽑았더니 ‘76번’이었다. 그날 늦은 오후에 겨우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씨는 “다른 곳에 가려고 알아봤더니 동네 근처 모든 소아과들이 아침 7시부터 와서 기다려야 겨우 그날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더라”며 “아이 키우기가 갈수록 힘들어진다”고 했다.
전공의들의 소아청소년과 기피현상으로 인해 지역마다 소아과가 줄어들고 있는 추세에다 최근 독감과 장염이 유행하는 지역이 많아지면서 소아과가 문을 열기도 전에 미리 줄을 서고 진료를 기다리는 ‘소아과 오픈런’현상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오전 8시쯤 접수를 시작하면 30분 만에 그날 오후 진료까지 모두 마감되는 것이 예사라고 한다.
부모들은 동네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병원별로 언제쯤 가 있어야 하는지, 접수 마감이 언제쯤 되는지 등의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원격으로 병원에 접수 대기를 걸어 놓을 수 있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도 나왔다. 돈을 받고 대신 줄을 서주는 소아과 오픈런 아르바이트도 등장했다. 동네 소아과 숫자도 줄고 있어 앞으로 환절기 등에 이런 소아과 오픈런이 계속될 것이란 전망이 많다.
최근 서울 강남의 한 육아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ㅇㅇ소아과 진료 시작이 오전 9시던데 미리 줄 서는 방법이 있나요?”라는 글이 올라왔다. 댓글에는 “건물 안쪽 계단으로 미리 줄을 설 수 있다” “아침 7시에 가야 그나마 오전에 진료받을 수 있다”는 등 조언이 올라왔다.
해당 소아과는 진료 시작 1시간 전인 오전 8시에 가면 이미 대기 번호가 60번이 넘는 인기 병원이라고 한다. 최근 독감과 장염이 유행하면서 오전 8시 30분이면 대기 번호 100번대가 되기 일쑤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동네에서 31개월 된 아들을 키우는 B(31)씨는 “친절하고 좋다는 병원이라 가고 싶지만 갈 수가 없다”며 “오픈런에 도전했지만 금세 진료가 마감됐다고 해서 다른 곳에 다닌다”고 했다.
부모들은 “병원을 가는 게 이렇게 어려우면 아픈 아이를 대체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 것이냐”고 호소한다. 서울 강남구에 사는 직장인 C(35)씨는 지난 15일 20개월 아이가 전날부터 설사를 해 출근길인 오전 8시쯤 소아과에 갔지만 이미 대기자가 40명이 넘었다고 한다. 그는 “아이 설사가 멎지 않아서 내일 또 오픈런을 해야 할 것 같다”며 한숨을 쉬었다.
독감·장염 등으로 최근 수요가 폭증한 것도 원인이지만 동네 소아과 자체도 감소세다. 2017~2021년 5년간 전국에서 폐업한 소아과만 662곳에 달한다. 낮은 출산율로 영·유아가 줄어든 데다, 의대생들의 소아과 기피 현상도 뚜렷해지고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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