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경인고속도로 방음터널 250m 전소... 반대편 달리던 운전자 5명 사망
- 플라스틱, 화재 시 유독가스 내뿜고 불도 쉽게 붙어
29일 과천 제2경인고속도로 방음터널 화재 당시 현장에 있었던 김선미(41)씨는 화재가 발생하자 기저귀를 물에 적셔 아이 얼굴을 가리고 급하게 빠져나왔다. 김씨는 “방음터널 구간에 들어서자 차들이 멈춰서더니 갑자기 후진을 했다”며 “후진 속도가 점점 빨라지길래 무슨 일이 생겼구나 싶었는데 어느 순간 주변이 연기로 가득찼다”고 말했다. 이후 김 씨는 본능적으로 기저귀를 물에 적셔 7살 아들 얼굴만 가리고 급히 현장에서 대피했다고 한다.
이에 윤씨는 차량 문을 열고 나와 대피를 시작했으나 검은 연기와 숨막히는 열기가 온몸을 덮었다. 그는 “연기 때문에 코 앞도 보이지 않아서 몸을 바짝 낮추고 불이 난 반대방향으로 기어서 대피했다”며 “옆에선 넘어지고, 소리지르고 그야말로 아수라장”이라고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30일 소방당국에 따르면 이번 화재는 전날 오후 1시 49분경 제2경인고속도로(안양에서 성남방면) 방음 터널을 주행 중이던 폐기물 처리용 집게 트럭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집게트럭 운전자는 차량에서 화재가 발생하자 4차선에 차를 정차하고 대피했고, 불길이 터널의 플라스틱 재질의 방음재에 옮겨 붙으며 터널 전체로 확산된 것으로 보인다.
화재의 여파로 5명이 숨졌다. 불이 난 집게트럭은 안양→성남 방면으로 주행중이었지만, 사망자는 모두 반대 방향(성남→안양)을 주행하던 차량에서 나왔다.
소방과 경찰은 아치형으로 된 방음터널이 순식간에 불에 타면서 반대편 차선에도 영향을 줬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불이 확산하는 속도가 워낙 빨랐기 때문에 반대편을 달리던 차량도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며 "감식을 통해 정확한 사망 원인을 확인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사망자 외에 3명은 안면부 화상 등 중상을 입었고, 34명은 단순연기흡입 등으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불이 난 구간을 달리던 차량도 40여대가 전소됐다. 거센 불길로 타이어가 모두 녹아내렸고 차체는 그을렸으며 주변으론 깨진 유리창들이 널브러졌다.
화재가 발생한 방음터널은 2017년 제2경인고속도로(안양~성남)가 개통되면서 함께 만들어졌다. 총 길이는 840m이며, 이 중 200~250m 구간이 불에 탄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50명 규모의 수사본부를 편성하고, 이날 오전 10시 30분부터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 관계기관과 합동감식에 나선다. 또 집게트럭 운전자를 상대로 조사를 이어가는 한편, 트럭 뒷바퀴 또는 엔진룸에서 불길이 일었다는 목격자 진술을 토대로 정확한 화재 원인을 조사할 방침이다.
이처럼 집게트럭에서 시작된 불이 수백m 길이 터널을 태운 데는 방음터널이 화재에 취약한 플라스틱 소재로 이뤄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보통 방음터널에는 플라스틱 소재인 폴리카보네이트(PC)나 폴리메타크릴산 메틸(PMMA)이 사용된다고 한다. PMMA는 PC보다 저렴하지만, 열에는 보다 취약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불이 난 방음터널은 PMMA소재가 사용된 것으로 파악됐다.
전문가들은 두 소재 모두 일반 플라스틱보다는 열을 견딜 수 있지만 결국 불에 타는 플라스틱 소재라는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미국,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 도로 방음터널은 플라스틱을 사용한다"며 "때문에 불이 잘 번지고 불똥이 뚝뚝 떨어져 대피가 어려웠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방음터널이 규제 사각지대에 있다는 주장도 있다. 일반 터널에 비해 방음터널에 적용되는 규정이 약하다는 것이다. 공 교수는 "방음터널은 여느 터널처럼 지하시설이 아닌 지상시설로 분류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화재 방재 관련 규정을 까다롭게 받지 않는다"며 "안전을 위해서라면 비용이 더 들더라도 강화유리로 교체해야 한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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