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가다간 경제 망한다’ 10개 핵심 지표 중 여전히 7개 하강·둔화

국내 경기 상황을 보다 면밀하게 확인할 수 있는 핵심 지표 10개 중 생산, 소비, 투자 등 7개 지표가 하강 또는 둔화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가 여전히 반등하지 못하고 바닥을 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올해 한국 경제가 ‘상저하고(上低下高)’ 흐름을 보여 하반기엔 도약할 것이라고 전망했으나 이같은 추세가 이어진다면 하반기에도 쉽지 않다는 전망이다.



9일 통계청이 발표한 ‘경기순환시계’에 따르면 핵심 10개 지표 가운데 광공업생산지수, 소매판매액지수, 기업경기실사지수, 수출액, 수입액 등 5개 지표가 올 1월을 기점으로 하강 국면에 진입했고, 설비투자지수와 취업자 수는 둔화 국면에 접어들었다. 상승·회복 국면에 들어있는 지표는 서비스업생산지수, 소비자기대지수, 건설기성액 등 3개에 불과했다.

경기순환시계란 대표적 경기 지표 10개를 각각 ‘상승→둔화→하강→회복’ 국면으로 분류해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이다.

작년 1월에만 하더라도 경기순환시계를 구성하는 10개 지표 중 하강·둔화 국면에 놓인 지표는 5개 였으며, 지난해 9월부터 7개로 늘어난 하강·둔화 국면 지표는 10월·11월에 9개로 최정점을 찍은 뒤 12월 8개, 올해 7개로 점차 줄어들고는 있지만 여전히 경제 지표 흐름이 좋지 않다.

특히 수출액, 광공업생산지수, 기업경기실사지수 등 주요 지표는 2, 3월에 더 나빠졌다. 예컨대 광공업생산지수는 지난 2월 99.2를 기록해 2020년 8월 이후 2년6개월 만에 기준치(100) 밑으로 떨어졌다.

경기순환시계 구성지표는 아니지만 향후 경기를 예측하는 데 쓰이는 선행종합지수 순환변동치도 2월 98.5를 기록해 8개월째 기준치(100)를 밑돌았다.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대부분 지표가 악화하는 상황에서 정부도 뾰족한 대응 수단이 없어 올 하반기 경기 상저하고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31일 공개된 통계청의 ‘2월 산업동향 보고서’엔 생산·소비·투자가 모두 늘어나 2021년 12월 이후 1년 2개월 만에 ‘트리플 증가’를 기록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일각에서는 경기가 바닥을 찍고 회복세에 접어들었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기획재정부는 이를 일축하며 다소 암울한 전망을 내놨다. 기재부 관계자는 “수치가 상승하곤 있지만 작년 하반기 이후 하락세가 워낙 컸던 영향일 것”이라며 “모든 경기지표가 나아질 기미가 없어 올해 1%대 중반 경제 성장도 쉽지 않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경기가 바닥권을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은 통계청 경기순환시계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경기순환시계에서 ‘하강’ 국면은 지표가 전월보다 하락해 기존 추세를 밑돈다는 뜻이다. 그러다 바닥을 찍고 상승하면 ‘회복’, 계속 올라서 추세를 웃돌면 ‘상승’, 정점에서 내려오면 ‘둔화’다. 작년 중순까지만 해도 10개 지표는 하강·둔화와 상승·회복의 접점에서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경기 침체냐, 회복이냐를 판단하기 어려웠다는 뜻이다.

하지만 작년 하반기부터는 하강·둔화 흐름이 뚜렷해진 지표가 대부분이다. 특히 지난 1월 기준 광공업생산지수, 기업경기실사지수, 수출액, 소매판매액지수는 명백히 하강 국면에 진입했다. 기업경기실사지수는 작년 1월 86에서 올해 1월 69로 곤두박질쳤다. 기준치(100)를 한참 밑도는 수준이다. 광공업생산지수는 이 기간 115.4에서 102.5로 떨어졌고, 소매판매액지수는 106.1에서 102.9로 내려갔다. 핵심 지표 하락세는 2, 3월에도 계속되고 있다.

제조업을 비롯한 광공업생산지수는 2월엔 99.2(2020년=100)로, 2020년(8월) 이후 2년6개월 만에 100 밑으로 떨어졌다. 반도체 시황 악화 등으로 광공업생산이 코로나19 사태 직후보다 나빠진 것이다. 3월 수출도 전년 동기 대비 13.6% 감소한 551억3000만달러에 그쳤다. 수출은 지난해 10월 후 6개월 연속 감소세다.

경기순환시계와 별개로 경기 흐름을 가늠할 수 있는 ‘동행지수 순환변동치’와 향후 경기를 예측하는 데 쓰이는 ‘선행종합지수 순환변동치’도 모두 기준치(100)보다 낮다. 두 지수가 동시에 100 미만인 상태가 이어지는 게 벌써 3개월째다. 특히 선행종합지수는 8개월째 기준치를 밑돌고 있다. 동행지수는 1월까지 5개월 연속 감소세를 보이다가 2월 99.4로 전월 대비 0.4포인트 오르긴 했지만 아직 상승 추세로 전환했다고 보긴 어렵다는 게 기재부 설명이다.

주요 지표가 바닥권을 헤매면서 외국계 투자은행들은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1%대에 간신히 ‘턱걸이’할 것으로 내다봤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8개 투자은행(IB)이 지난달 말 보고서에서 예상한 한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는 평균 1.1%였다. 씨티는 한국 경제가 0.7% 성장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노무라는 마이너스 성장(-0.4%)을 예상했다.

해외 IB의 전망은 기재부(1.6%), 한국은행(1.6%) 전망과 차이가 있다. 정부·한은의 올해 전망은 ‘상저하고’(상반기 부진, 하반기 회복)다. 문제는 단기간에 경기 회복을 장담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내수 회복세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한국 경제의 핵심인 반도체 시황은 급격히 악화하고, 이 여파로 수출이 6개월 연속 감소했기 때문이다. 당장 삼성전자 등 대표기업들의 ‘어닝 쇼크(실적 충격)’까지 겹치면서 경기회복이 늦춰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국의 최대 교역국인 중국발 ‘훈풍’도 아직은 감지되지 않고 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지난 6일 “수출에서 중국의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 효과가 아직 본격화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수출과 내수 부진으로 올 하반기에 경기 침체가 장기화될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저작권자 ⓒ 의사나라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