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지부와 의협, 의료현안협의체 회의에서 의대정원 증원 논의 합의
- 2020년에는 단체 행동에 나선 전공의, 이번엔 미적지근
- 대전협 “의협과 노선 다르게 하지 않을 것” 동참 선언
대한의사협회가 복지부와 의대 정원 증원이 원칙적으로 합의했다. 오는 2025년 입시부터 적용될 것으로 보이는 이번 합의에 대해 의료계의 반발이 거세게 나오며 파업도 언급되는 가운데 가운데 2020년 파업의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전공의들의 반응은 다소 미온적이다.
지난 8일 열린 의료현안협의체 제10차 회의에서 보건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는 필수의료 및 지역의료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의대정원을 증원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의료계 내에서는 곧바로 강력한 반발이 튀어나오고 있다.
전국의사총연합은 이날 성명을 통해 “주먹구구식 합의”라며 “정말 필수의료를 살리겠다면 의사들이 필수의료로 가기 위해 경쟁하는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의사 확충이 만능 치트키는 아니다”라고 규탄했다.
서울시내과의사회는 “의협의 행보는 전체 의사 회원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주고 있다”며 합의가 사실인지 해명을 요구하는 공개 질의서를 보내기도 했다.
이에 의협도 내부 안정을 위해 상황 수습에 나서고 있다. 의대 증원에 합의한 것이 아니며, 필수의료와 지역의료 소생을 위한 방안으로 의료인력 확충을 먼저 논의한 뒤 합의하겠다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공공의대 등 새로운 의대 신설로 증원하는 방안에는 명확하게 ‘절대 불가’ 입장을 강조한 것을 감안할 때 인력 확충안 자체에 명쾌한 반대 입장을 표명하지 않은 것은 사실상 추진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이런 상황에서 유독 전공의만은 어떠한 반대 입장도 없이 침묵을 지키고 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합의 발표가 된 지 사흘이 지나도록 성명서 발표조차 없는 상황이다. 그동안 많은 현안에 앞장서왔던 만큼 다소 의아한 행보이다.
지난 2020년 정부가 공공의대 신설과 의대 정원 증원을 논의했을 당시, 전공의 과반수가 해당 정책에 크게 반발해 총파업에 나서고, 의대생들도 국가 고시를 전면 거부하며 집단 행동에 나선 바 있다.
정권이 바뀐 이후에도 의대 증원에 반대하는 기조는 계속 이어졌다. 지난 1월 젊은 의사 커뮤니티에는 의대 증원 정책에 의문을 제기하는 글이 올라왔고, 한 회원은 “한국 의료 개선을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일부 이익 집단과 정치인이 미는 캐치프레이즈”라고 혹평했다.
다른 회원들은 역시 “오히려 인기과의 경쟁만 치열해질 것”이라며 “증원보다 기피과 지원을 위한 수가 처우 개선 등이 더 시급하다”는 의견이 이어졌다.
그러나 이번에도 같은 사안임에도 2020년 파업 당시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가 펼쳐지고 있다. 이는 대전협 강민구 회장이 지난 5월 간호법 제정 시 의료계 총파업과 관련한 기자회견에서 “2020년 총파업으로 전공의들이 비판받았던 일을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다”며 “더이상 이기적 직역으로 손가락질 받고 싶지 않다. 국민 건강 피해를 최소화 하는 방향으로 단체행동을 갈 것”이라고 밝힌 것의 연장선으로 분석된다.
강 회장은 “의협에서는 ‘논의할 수 있다’에 대해 합의한 것”이라며 “구체적으로 합의한 내용이 밝혀진 것이 없어 저희 입장을 명확히 말씀드리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전협 회원들 안에서도 다양한 여론이 있을 것 같다. 앞으로 어떻게 대응할지는 회원들이랑 상의를 해봐야 한다”며 “제가 의료현안협의체에 참여하고 있어 논의 상황을 계속 지켜볼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의협과 다른 노선으로 행동을 취할 생각은 없음을 분명히 했다. 즉, 의대 정원 확충에 대전협도 일부 수긍하는 셈이다.
2020년 있었던 파업과 같은 단체 행동은 명백한 불순응이 전제돼야 한다. 의협이 공공의대 신설에 ‘절대 불가’라고 명확하게 의견 표명을 한 것 같은 입장표명이 명백한 불순응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지난 파업의 트라우마로 인해 대전협은 이번 합의와 관련해 어떠한 목소리를 높이는 것에 대해 부담을 느끼고 있는 분위기이다.
현재 대전협이 보이고 있는 대응 방식은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원천적 반대가 아닌 필수의료 극복을 위해 다른 방안을 제시하려는 이른바 간접적인 반대이다.
대전협은 12일 입장문을 통해 필수의료와 지역 공공의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의사 수 증원이 아니라 국민건강보험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체적 보건재정 투입 계획이 없다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라고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기피영역 의료인력 수급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 유사한 현상이라고도 설명했다. 다만 우리나라에서는 의사 총량 부족이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며 단순 의사 총량에 대한 논의 뿐만 아니라 기존 의료인력 재배치 방안을 포함한 여러 정책 조합이 필요하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대전협은 “정부와 보험자가 필수의료에 대한 투자 의지를 보여주지 않는다면 모든 것은 물거품이 될 것”이라며 “현재의 문제는 의사 수를 늘려도 의사의 자율성을 존중하지 않으면 해결될 수 없다”고 덧붙였다.
한편, 오는 15일로 예정된 11차 의료현안협의체에서 복지부와 의협은 의대정원 증원과 관련한 구체적인 사안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의료인력 확충이 사실상 불가피한 가운데 전공의들의 미온적인 태도가 어느정도까지 이어지게 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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