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 진료, 환경 제대로 안 만들면 하고 싶어도 못한다”

- 의료계, 원산협 심포지엄서 환경 조성 강조
- “법·제도 개선하고 기술·서비스 개발로 저변 넓혀야”

정부의 비대면진료 시범 사업 종료가 코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복지부는 이미 비대면 진료 제도화를 공언하고 관련 산업 활성화를 위한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산업계에서는 비대면 진료를 필두로 원격의료 가치를 강조하며 규제를 최소화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 발언하는 이세라 대한외과의사회 회장 ㅣ 출처 : 원격의료산업협의회

다만 의료계 시각은 이와는 반대다. 의사가 필요하면 비대면 진료를 할 수 있고, 소비자가 원하는 대로 원격의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환경부터 조성되어야 진정한 의미의 비대면 진료가 가능하다는 의견이다.

지난 8일 서울시 여의도에 위치한 전경련회관에서 열린 원격의료산업협의회 출법 2주년 심포지엄에서 의료계 전문가들은 한국 의료 환경에서 원격의료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논하면서 이같이 설명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대한외과의사회 이세라 회장은 “비대면 진료를 원하는 의사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의사가 비대면 진료를 할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며 “의료법 등 법률 규정 탓에 제대로 못하고 해봤자 돌아오는 이익도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의사는 의료기관에서만 진료해야 한다는 의료법 규정을 바꿔야 한다. 또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의 진료량 기준을 비율이 아니라 인원으로 변경해야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막을 수 있다”며 “약품 배송 문제는 비대면 진료에 한해 선택 분업을 도입해 풀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대병원 핵의학과 강건국 교수도 의료 데이터 규제를 완화할 필요성이 있다고 했다. 정부는 디지털 헬스케어 활성화를 위해 각종 논의와 제도를 이끌기보다는 뒤에서 조율하고 감독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강 교수는 “의료 서비스가 원격 기술을 도입하고 디지털화를 이뤄도 정작 서비스에 쓸 데이터가 소비자에게 없다. 금융 분야는 당국이 관리·감독하고 데이터는 민간에 넘겨줬다”며 “그러나 의료는 ‘민감 정보’라고 주지 않는다. 정말 혈당 수치가 은행계좌보다 민감한 정보라고 보느냐”고 꼬집었다.

이어 “이런 논리로 정부가 원격의료 관련 의제를 주도하면서 오히려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며 “소비자가 본인 데이터를 보유하고 (원격의료) 기업이 데이터를 검증하면서 분석을 통해 이에 맞는 처방을 하고 진료하는 데이터 중심의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며 “정부는 전면이 아니라 뒤에서 인증 사업과 모니터링을 맡으면 된다”고 말했다.

또한 정부 외에도 산업계가 원격의료 저변 확대를 위해 더 노력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진료 영역으로 원격의로를 국한하면 의료계와 국민을 설득할 가치 창출이 어렵다는 것이다.

서울대병원 공공진료센터 권용진 교수는 “원격의료는 원격 기술을 활용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원격의료가 만드는 가치는 진료 외에도 많다”며 “그러나 지금은 진료 접근성 차원에서만 원격의료의 가치를 논하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권 교수는 “시범사업으로 안정성을 입증하면서 가치 창출 방안도 함께 모색해야 한다. 산업계가 이를 준비해야 한다”며 “국민이 ‘예전과 다르다’고 체감할 때 원격의료의 가치도 발현되고 이를 이용하라고 소비자를 설득할 수 있다. 소비자가 설득돼야 구매도 이뤄진다”고 전했다.

소비자가 원하는 기술과 서비스를 통해 원격의료의 범위를 넓히면 수가를 전제로한 현행 비즈니스 모델을 벗어날 수 있다고 했다.

권 교수는 “원격 기술을 활용해 지자체나 의료기관, 개인이 원하는 서비스로 개발 영역을 넓혀야 한다”며 “주민 대상 건강 프로그램을 활성화하는 기술이라면 지자체가 구매한다. 비용절감에 도움이 되는 원격의료 기술이면 의료기관이 도입한다. 개인 역시도 필요했던 건강관리 서비스라면 보험 여부와 상관없이 산다”고 말했다.

이어 “원격의료 구매자를 보험자로 국한해서는 안 된다. 건강보험 안에만 존재하는 수익 모델은 시대에 뒤처진다”며 “소비자가 어떻게 돈을 내게 할지 고민해야지 단지 ‘보험자가 돈을 낸다’는 명제에 갇힌 접근법은 버릴 때”라고 지적했다.

이에 이세라 부회장은 진료분야도 건강보험 급여 등재를 기다리는 대신 비급여 항목에서 시작하는 방법도 제시했다.

이 부회장은 “데이터를 통해 안전성과 유효성을 확보해야만 건강보험 급여도 가능한데 갈길이 아직 멀다”며 “정부는 비대면 진료에 대한 데이터나 통계를 제대로 확보하고 있지도 않다”고 비판했다.

이어 “비대면 진료에 대한 수요는 분명히 존재한다. 비급여라도 비대면 진료를 받겠다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다면 비급여부터 시작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며 “원격의료라는 닫힌 문을 열 열쇠는 이렇게 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저작권자 ⓒ 의사나라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