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결과, 마취 환자 사망... 엇갈린 민·형사 결과

- 대법, 의사 과실치사죄 파기…병원 배상 책임은 인정
- 형사→과실과 사망 인과관계 '의심 없는 수준' 입증 必
- 민사→인과관계 '개연성'이면 돼…의료소송 환자 부담 ↓

환자가 사망한 전신마취 수술 중의 사건에서 형사와 민사 재판 결과가 나뉘었다. 병원의 배상 책임은 그대로 인정됐지만, 마취를 담당한 전문의에 대한 유죄 선고는 뒤집혔다. 대법원은 의료진 과실과 환자 사망 사이 인과관계 증명 수준은 형사와 민사가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대법원이 이번에 의료사고에 대한 환자의 손해 배상 증명 책임을 완화하게 되면서 관련 사건 재판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여진다.

대법원은 지난달 31일 전신마취 수술에서 환자가 사망한 사건으로 기소된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 A씨에게 업무상과실치사 유죄로 금고형을 선고한 원심(항소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지난 12일 밝혔다.


A씨가 업무상 주의의무를 소홀히 했지만 이런 과실로 피해자(환자) 사망했다고 유죄를 선고하기에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했다. 다만 같은 날 진행한 이 사건 민사 상고심에서는 A씨 과실에 대해 병원이 환자 측에 손해 배상하도록 했다.

사망한 환자 B씨는 지난 2015년 12월 오른쪽 어깨 회전근개파열 등으로 C병원에서 수술받았다. C병원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인 A씨는 수술 당일 오전 10시 15분경 전신마취와 부분마취를 진행하고 42분경 간호사 D씨에게 상태를 지켜보라고 지시한 뒤 수술실을 나왔다.

11시부터 시작한 수술에서 B씨는 저혈압과 산소포화도 하강 증세를 보였다. 간호사 연락을 받고 돌아온 A씨가 에피네프린 등을 투여해도 회복하지 못했다. A씨는 수술을 중단하고 심폐소생술을 시행했다.

환자는 이날 인근 대학병원으로 전원했으나 응급실 도착 직후인 1시 33분경 사망했다. 이후 부검에서도 정확한 사인은 확인되지 않았다.

검찰은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인 A씨가 업무상 주의의무를 소홀히 해 환자가 사망에 이르렀다며 업무상과실치사 등 혐의로 기소했다. 마취 환자 감시 업무를 2~3개월 차 간호사에게 맡기고서 간호사가 호출해도 즉시 수술실에 가지 않는 등 과실을 저질렀다는 이유다.

환자 B씨는 마취 시술 후 수술 시작 전에도 2번 혈압이 저하되는 등 저혈압 증상이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간호사 D씨는 활력징후 감시장치 경보에 따라 총 4차례 A씨에게 전화했다. A씨는 수술 시작 직후인 11시경 전화는 받지 않았고 13분경과 17분경 전화를 받고 수술실로 돌아와 20분경 혈압상승제를 투여했다.

이에 이 사건 형사 항소심 재판부는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인 A씨는 간호사에게 환자 감시 업무를 맡기고 다른 수술실을 옮겨 다니며 다른 환자 마취 시술을 했다. 간호사 호출을 받고도 신속히 수술실로 가지 않고 휴식을 취하는 등 마취 중 환자 감시와 신속한 대응 업무를 소홀히 했다"며 금고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판단은 달랐다. A씨가 업무상 과실을 저질렀지만 업무상과실치사를 인정하기 위한 인과관계가 충분히 증명되지 않았다고 봤다. 업무상 과실이 존재한다고 곧 "인과관계가 추정되거나 증명 정도가 경감되지 않는다"고 했다.

대법원 재판부는 "의사의 업무상과실치사상죄를 인정하려면 의료행위 중에 업무상 과실이 존재하고 이 때문에 환자 상해·사망 등 결과가 발생했다고 엄격한 증거에 따라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해야 한다"고 했다.

재판부는 "환자는 알 수 없는 원인으로 혈압 저하 증상을 보이다가 사망했다. 그러나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A씨가 환자를 직접 관찰하거나 간호사 호출을 받고 신속히 수술실에 가서 대응했다면 어떤 조치를 더 할 수 있었는지 그리고 그런 조치를 했다면 환자가 심정지에 이르지 않았다고 구체적으로 알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한 "환자가 심정지가 발생했을 때 A씨가 환자를 직접 관찰하다가 심폐소생술 등 조치를 했다면 환자가 사망하지 않았을 거라는 증명도 부족하다"며 "A씨의 업무상 과실로 환자가 사망했다고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되지 않았다"고 했다.

이에 따라 대법원 재판부는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 A씨에게 업무상과실치사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서울중앙지법에 돌려보내 사건을 다시 다루도록 했다.

반면 같은 날 민사 상고심에서는 병원의 손해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형사 재판은 과실과 사망 사이 인과관계를 '합리적인 의심이 없을 정도'로 증명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민사 재판은 '개연성'을 증명하는 수준이면 된다고 했다. 이전보다 환자 측 증명 책임을 완화한 것이다.

재판부는 "의료행위는 고도의 전문적 지식이 필요하다. 환자가 의료진 과실을 증명하기 쉽지 않고 현대의학 지식의 불완전성으로 인해 진료상 과실과 환자가 입은 손해 사이 인과관계는 환자는 물론 의료진도 알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했다.

따라서 "환자가 의료행위 당시 임상에서 실천하는 의료 수준에서 의료인에게 통상적으로 요구되는 주의의무 위반 즉 진료상 과실로 평가되는 행위가 있다고 증명하고 그 과실로 손해가 발생했다는 개연성을 증명한다면 인과관계 증명 책임을 완화하는 게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이때 손해 발생 개연성이 꼭 의학적 측면에서 "의심이 없을 정도로" 증명될 필요는 없다고 했다. 다만 "과실과 손해 사이 인과관계를 인정하면 의학적 원리 등에 부합하지 않거나 막연한 가능성 수준에 그칠 경우에는 증명했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이에 따르면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 A씨 과실로 환자가 사망했다는 개연성이 인정된다고 했다.

재판부는 "만약 A씨가 간호사 호출에 대응해 신속히 혈압 회복 등 조치를 했다면 환자가 회복했을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보인다"며 "병원이 환자 B씨 사망이 진료상 과실이 아니라 다른 원인으로 발생했다고 증명하지 않는 한 진료상 과실과 환자 사망 간 인과관계를 추정할 수 있다"고 했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병원 상고를 모두 기각하고 환자 측에 손해 배상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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