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의사 수만 늘려서는 의료 과잉 해결 못해"
건강보험 재정 위기, 통제 시스템 부재가 원인
정부의 의료 개혁, 실효성 있는 관리 방안 필요
응급실에서 발생하는 '뺑뺑이' 현상과 소아청소년과의 '오픈런' 문제는 의료 공급을 늘려 해결하겠다는 정부의 계획으로 해결될 수 없는 문제들이다. 이는 단순히 의대 정원을 늘리는 것으로는 해결되지 않으며, 의료 이용 행태를 통제하지 않으면 아무리 공급을 늘려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지난 23일 대한민국의학한림원과 한국의학바이오기자협회가 '대한민국 의료이용의 문제점과 해법'을 주제로 개최한 제2회 미디어포럼에서 이와 같은 지적들이 이어졌다.
고려대안암병원 정형외과 박종훈 교수는 "과잉 의료를 해결하지 않고 의사 수만 논의하는 상황이 참담하다"며 의료 이용을 통제하는 시스템이 없는 것이 문제라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통제가 없으니 의료 이용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결국 그로 인한 건강보험 재정 위기는 불 보듯 뻔하다. 학자들은 오는 2028년이나 2030년경 건보재정이 소멸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현재의 의료제도를 전면 재구성해야 할 시점이라고 주장했다. "지금은 의료제도 전체를 리셋해야 할 시점인데 엉뚱한 진단을 내리고 리모델링하고 있다"며 "의사 수가 OECD 평균에 못 미친다는 얘기를 자꾸 한다. 그렇다면 OECD 통계의 다른 항목들은 어떻게 볼 것인가. OECD 평균의 3배에 달하는 병상 수와 외래 이용 문제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라고 지적했다. 또한, GDP 대비 의료비가 2020년 8.4%에서 2022년 9.7%로 증가하는 등 "엄청난 속도로 의료 이용이 늘고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무도 얘기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박 교수는 건강보험 제도가 "저수가 원칙"으로 도입되었고 이는 "공급자의 박리다매와 이용자의 과잉 이용을 전제 조건으로 시작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저수가 정책을 유지한 결과 환자들이 의료 이용 가격에 대한 체감도가 떨어졌다고 지적했다. 비급여 의료비에 대한 부담을 낮춘 실손보험 역시 "의료생태계를 엉망으로 만드는 데 한몫했다"고 덧붙였다.
박 교수는 또한, 공급과 수요 사이를 통제하는 시스템이 없기 때문에 본인부담금이 없는 나라보다 의료 이용량이 많다고 지적했다. "본인부담금이 없는 북유럽 국가는 공급자와 이용자 사이에 관리자가 있다. 국가나 보험사가 관리자 역할을 하기에 공급과 이용을 철저하게 통제한다"며 "한국은 이 같은 통제 시스템이 없다"고 말했다.
울산의대 예방의학교실 이상일 교수도 의료 이용을 통제할 수단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의료 과다 이용 문제가 있다. 통제 장치가 없다 보니 1년에 병원을 2,000번 이상 간 사람도 있다"며 "과한 의료 이용을 차단할 장치가 없어 우리나라 1인당 외래 이용 건수가 OECD 평균의 2.6배다. 전 세계에서 가장 외래 이용을 많이 하는 나라"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대형병원 환자 집중 현상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동반 질환 없는 단순 고혈압이나 당뇨 환자 비율이 상급종합병원도 85% 이상이다. 굳이 상급종합병원에서 진료받을 필요가 없는 환자들이 상급종합병원을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대안암병원 응급의학과 이성우 교수는 응급실이 환자를 수용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통제되지 않는 의료 이용'에 있다고 설명했다. '응급이 아닌' 경증 환자들도 손쉽게 응급실을 찾으면서 '진짜 응급 환자'를 수용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응급실이 입원을 위한 창구로 활용되기도 하며, 환자들이 선호하는 대학병원에서는 입원도 쉽지 않기 때문에 결국 응급실에 머무는 환자가 늘어나고 더는 환자를 수용할 수 없게 된다. 이 때문에 응급실에서 환자들이 '뺑뺑이'를 돌게 되는 것이다.
이 교수는 "사회 현상으로 나타나는 게 응급실 미수용이다. 이를 자극적으로 '응급실 뺑뺑이'라고도 한다"며 "이런 현상이 생기는 이유 중 하나가 배후 진료가 되지 않고 응급수술실 수가 줄면서 수술이 필요한 환자를 수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는 의료자원이 부족한 지방에서 더 두드러진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전원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도 강하다. 환자는 처음 간 병원에서 최종 치료까지 받기를 원한다"며 "하지만 적정한 전원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적정 전원을 잘 관리하든지 아니면 자원을 투입해 평소 가동률 50%여도 병상과 수술실을 여유 있게 구축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이 같은 지적에 대해 보건복지부도 공감의 뜻을 표했다. 복지부 강준 의료개혁총괄과장은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에서 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 강 과장은 "각자도생, 무한경쟁하는 현재 의료생태계에 대해 어떻게 합리적인 규율이나 관리 기준을 만들 것인가가 과제라고 생각한다"며 "실손보험 개혁 같은 구조적인 문제들도 함께 개선하겠다"고 말했다.
강 과장은 "건강보험 본인부담을 통한 관리 기전이 있지만 그 기전이 지금은 사실상 작동하지 않고 있다. 비용을 의식하도록 하는 개혁도 필요하지만 수요자들이 필요한 의료서비스를 이용할 때 충족되지 못한 부분들도 있다"며 "미충족 수요에 대한 공급체계를 만드는 것도 의료전달체계 정상화의 중요한 과제로 생각하고 의료개혁특위 논의 과제로 상정해 놨다"고 말했다. 강 과장은 "의료개혁을 위한 굉장히 좋은 기회의 창이 열린 것 같다. 어려운 상황들이 빠르게 수급되면 대화와 개혁을 할 수 있는 장으로 의료개혁특위가 운영될 수 있다"며 "정부와 의료계, 국민이 함께 논의하는 과정을 통해 신뢰를 굳건히 하는 계기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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