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취 전문의가 수술실에 계속 있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 팔꿈치 수술 도중 사망한 여아 사건 마취의사 향한 비난 여론 폭주
- 국내 마취 수가 수준 日의 7분의 1, 美에 23분의 1에 불과
- 전문의 고용할수록 적자... 마취 인력 및 투자 위축 불가피

생명과 전혀 지장없던 팔꿈치 골절 수술을 받은 여아가 마취가 풀리는 과정에서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한 가운데 수술 당시 마취 전문의가 수술실에 짧게 머문 것이 알려지며 비난 여론이 형성되고 있지만, 의료계 전문가들에 따르면 그럴 수 밖에 없는 의료기관의 속사정이 따로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지난해 12월 경기도 김포의 한 정형외과 병원에서 송사랑 양(당시 4세)이 팔꿈치 골절 수술을 받은 후 사망한 사건이 발생해 경찰 수사가 시작됐고, 최근 당시 수술실 CCTV 영상이 언론을 통해 공개되며 논란이 일었다.

영상에 따르면 송 양은 수술 직후 마취에서 깨어나는 과정에서 호흡관란과 함께 온몸이 시퍼렇게 변하는 증상을 호소했는데, 이에 관해 유족들은 병원 측의 의료과실 의혹을 제기하고 있고, 해당 병원 측은 주치의의 처치에는 문제가 없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논란이 크게 발생하고 있는 이유는 수술 당시 담당 마취 전문의가 수술실에 계속해서 머무르지 않고 짧은 시간만 들어왔다 나가기를 반복했기 때문이다. 사건 당시 마취 전문의가 수술실에 머무른 총 시간을 합쳐도 2분이 채 되지 않았던 사실이 드러나자 수술이 부실했던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됐다.

현재 사건 관련 언론 기사나 댓글, 커뮤니티 등에서는 당시 마취 전문의가 수술실에 계속 머무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의료진을 맹비난하거나 해당 의료진들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내려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그러나 의료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의료의 이면에 이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마취 수가가 지나치게 낮아 마취 전문의가 한 수술에 계속 참여하면 적자가 날 수밖에 없는 구조라서 일부 규모가 작은 의료기관에서는 마취과 의사 한 명이 중대한 수술이 아니라면 한 수술에 계속 머물 수 없고 다른 수술이나 다른 업무에 투입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대한마취통증의학회에 따르면 국내 마취 수가는 일본의 7분의 1, 미국의 23분의 1 수준이고 소아나 중증·응급 환자 마취 가산율도 4분의 1 이하인 것으로 나타났다.

마취통증의학회가 지난달 공개한 지난 2016년 ‘원가계산시스템 적정성 검토 및 활용도 제고방안 2단계’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일본과 미국은 한국보다 국민 총소득이 각각 1.2배, 1.6배 높지만, 마취 수가는 각각 7배와 23배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일반 복부 수술 1시간의 마취 수가는 한국이 10만 3700원인데 비해 일본은 74만 9914원, 미국은 227만 3767원으로 나타났다. 또 심장 수술 1시간의 마취 수가도 한국은 15만 5550원인 데 비해 일본은 289만 2945원, 미국은 454만 7534원으로 나타났다.

특히 우리나라는 소아·중증·응급 환자 마취 가산율을 50% 적용하지만 미국은 200%, 일본은 300% 이상을 적용해 수가의 차이는 더 벌어진다.

이는 낮은 원가 보전율로 이어져 국내 병원들이 마취 인력 고용 저하와 시설 투자 미흡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마취통증의학회에 따르면 현재 국내 마취료의 원가 보전율은 72.7%로 나타났는데, 병원에서 지출해야 하는 인력이나 시설 투자 비용까지 고려하면 실제론 원가 대비 50%에 못 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처럼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를 고용할수록 오히려 적자가 나는 구조에서 만약 마취과 전문의 한 사람이 심각한 수술이 아닌데도 모든 수술 과정에서 마취 시작부터 환자가 회복실에 들어갈 때까지 계속 환자 곁을 지켜야 한다면 우리나라의 모든 수술 건수는 지금의 3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어 수술 대란이 발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준흠 대한마취통증의학회 회장(대한의사협회 보험이사, 상계백병원 교수)은 한 환자의 마취는 한 명의 마취과 의사가 담당해야 하는 게 기본 원칙이라면서 이를 지킬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연 회장은 “한 환자의 마취는 한 명의 마취의가 담당하는 게 원칙이고 응급 등 기타 사유가 있어 불가피하게 잠깐 비워야 할 때에도 다른 의료인이 지켜야 한다는 게 학회의 기본 입장”이라고 말했다.

다만 “(현재의 마취 수가로는 의료기관에서 마취과 전문의 고용을 충분히 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기 때문에) 제대로 된 시스템을 갖출 수 있도록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 마취 수가 가산은 물론 마취 적정성 평가의 강화, 마취료 별도 산정, 마취실명제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행 국내 수가 체계에서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가 하는 마취에 대한 가산이 따로 없어 집도의가 마취를 시행한 것과 동일하게 수가를 적용하고 있고, 포괄수가제를 통해 마취료도 별도로 산정되지 않아 의료기관에서 마취 관련 인력과 시설 투자가 위축되고 있는 문제를 지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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