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세 손자를 급발진 의심 사고로 잃은 할머니의 오열

- 23일 제조사 상대 손해배상 청구 첫 변론기일 진행
- 숨진 피해 아동 아버지와 운전자 할머니, 급발진 사고 주장

지난해 12월 강원도 강릉에서 발생한 급발진 의심 사고와 관련해 책임 소재를 가릴 민사소송이 사고 발생 5개월 만에 시작됐다. 이 사고로 68세 운전자 여성이 다쳤고, 뒷자석에 타고 있던 12세 손자 아동이 숨졌다.


▲ 출처 : KBS

23일 춘천지방법원 강릉지원 민사2부는 급발진 의심 사고 차량 운전자와 가족들이 제조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의 첫 변론기일을 진행했다. 앞서 유족들은 “자동차 결함으로 발생한 급발진 사고”를 주장하며 지난 1월 10일 사고 차량의 제조사인 쌍용자동차 측에 손해배상액 7억 6000만 원을 청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이번 사고의 운전자이자 숨진 아이의 할머니인 운전자 A씨는 “사랑하는 손자를 잃었고 나만 살아남아 미안하고 가슴이 미어진다”며 “누가 일부러 사고를 내서 내 손자를 잃겠느냐. 제 과실로 사고를 냈다는 누명을 쓰고는 죄책감에 살아갈 수가 없다”고 호소했다. 이어 “손자는 변호사를 꿈꾸며 열심히 공부하던 아이였다”며 “재판장께서 진실을 밝혀주시길 간절히 희망한다”고 호소했다.

숨진 아이의 아버지 이상훈 씨도 호소문을 통해 “강한 것이 옳은 것을 이겨온 사회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자동차 급발진 사고라고 생각한다”며 “급발진 사고의 원인을 전적으로 소비자인 운전자가 입증하게 하는 것 자체가 모순된 행위이며 폭력이다. 언제까지 제조사의 이권과 횡포 앞에 국민의 소중한 생명의 가치가 도외시돼야 하냐”고 지적했다.

이어 “대한민국에서 급발진 사고는 가정파괴범이자 연쇄살인범이다. 부디 이번 사고의 원인을 철저히 규명해주시고 대한민국은 옳은 것이 강한 것을 이기는 사회라는 것을 국민 모두에게 알려주시길 부탁드린다”며 “이번 소송이 급발진 사고에서 승소한 첫 사례가 되어 다시는 제조사가 방관하고 묵과하지 않도록 법 개정이 반드시 이뤄질 수 있도록 국회의원분들께도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유족 측은 이날 재판부에 사고의 정확한 원인 규명을 요청하는 1만7500부의 탄원서도 제출했다.

해당 사고는 지난해 12월 6일 오후 4시쯤 강릉시 홍제동의 한 도로에서 발생했다. A씨가 몰던 SUV 승용차가 도로 옆 지하통로에 빠지면서 함께 타고 있던 손자가 목숨을 잃었다. 이 사고로 A씨는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상 치사 혐의로 입건됐다.

원고 측은 처음부터 차량의 결함으로 인한 급발진 사고였다고 주장했다. 원고 측 소송대리를 맡은 하종선 변호사는 “이 사건은 급발진의 전형적인 4가지 요소를 지니고 있다. ‘웽’하는 굉음과 머플러(소음기)에서 흘러나온 액체, 도로상 타이어 자국과 흰 연기가 있고, 블랙박스 동영상에는 오작동 차량의 결함이 있음을 나타내는 운전자의 생생한 음성들이 녹음돼 있다”며 “약 30초가량 가속 페달 오조작 가능성에 대해서는 인체공학적 분석과 경험칙에 반한다”고 설명했다.

피고 측 소송대리인은 “사건 대리를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며 “국과수의 사고 원인 조사 결과를 충분히 확인 후 상세한 반박을 하겠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피고인 측에 “소장을 1월에 접수한 점과 3월에 변론기일을 통지했던 점을 들어 신속히 대응하지 않은 측면이 있어 이로 인한 불이익은 감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원고 측이 제출한 사고기록장치(EDR), 음향분석 감정신청을 모두 받아들였다. 사고 5초 전 차량의 속도가 110㎞인 상태에서 분당 회전수(RPM)가 5500까지 올랐으나 ‘속도가 거의 증가하지 않은’ 사실과 ‘가속 페달을 밟았다’는 국과수의 EDR 검사 결과가 모순되는 점을 통해 EDR의 신뢰성 상실을 증명하기 위해 감정을 신청했다.

한편, 이날 A씨가 제출한 탄원서가 공개되며 많은 이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했다. 이 탄원서에는 사랑하는 손주를 잃은 안타까운 심정과 함께 그동안 A씨가 어떤 마음으로 손주를 돌봤는지가 잘 담겼다.

A씨는 탄원서에서 “저녁마다 도현이가 보고 싶고 죄책감이 들어 눈물로 밤을 지새우고 있다. 죽자니 남겨질 아들에게 더 큰 죄를 짓는 것 같아 죽을수도 없다”며 “사고 당시 브레이크를 계속 밟았지만 속도가 줄지 않았고, 손자가 걱정돼 여러차례 손자를 불렀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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