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증원으로 촉발된 전공의 집단사직 사태로 인해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 수급이 원활하지 않아 수술이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다. 이로 인해 수술 중단 위기를 막기 위해서는 전문의 충원이 시급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조춘규 대한마취통증의학회 정책부회장(건양의대)은 22일 열린 간담회에서 의정 갈등으로 빚어진 의료대란 속에서 발생하는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는 "전공의들이 맡았던 환자 상태 확인 및 응급조치, 마취동의서 작성 등의 업무를 현재 교수들이 전담하고 있다"며 "의대 증원 사태 이후 업무량이 3~4배로 증가한 것 같다"고 밝혔다.

조 부회장은 "병원마다 상황이 다르지만 교수 1명이 여러 과의 고난도 수술을 모두 맡는 경우도 있다"며 "산부인과마취, 심장마취, 소아마취에 응급수술까지 더해지면 교수들이 체력적으로 한계에 도달한다"고 호소했다.

한동우 기획이사(연세의대)도 "수술은 물론 환자 상태가 갑자기 악화되면 심폐소생술도 해야 하는데 이때 마취과 의사가 필요하다"며 "마취과는 병원에서 눈에 띄지 않지만 필수적인 과(科)"라고 강조했다.

마취과 전문의는 수술 전 환자 특성에 맞춰 마취 약물을 제조 및 투여하고, 수술 후에는 회복 과정을 모니터링하는 등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마취가 없이는 수술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외과, 정형외과, 신경외과, 산부인과 등 다양한 과에서 수술 스케줄을 잡기 전에 마취과 전문의의 일정을 확인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전공의가 사라지면서 수술 전체 과정을 마취과 교수 1명이 담당하는 일이 많아졌다. 3명 이상의 마취과 전문의가 투입되어야 하는 큰 수술도 한 명이 소화해야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이로 인해 번아웃을 호소하는 의사들이 많아지고 있다.

김성협 총무이사(건국의대)는 "마취과 의사 부족으로 수술 건수가 절반으로 감소하거나 지연되는 경우가 많다"며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버티기 어렵다. 매일 불안한 마음"이라고 토로했다.

의료대란이 장기화되면서 대한마취통증의학회는 환자 안전을 위해 마취과 전문의 충원이 필요하며, 병원들이 의사 인력을 추가로 고용할 수 있도록 수가를 현실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성협 총무이사는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환자 안전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며 "이미 배출된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가 7000명 정도인데, 이 중 10%만 고용해도 문제가 줄어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전공의가 아닌 전문의를 고용하면 되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며 "병원이 의사를 고용하려면 인력 운영이 가능한 수준의 수가가 필요한데 마취과 수가는 터무니없이 낮다"고 지적했다. 조춘규 정책부회장도 "더 큰 문제는 포괄수가제에 마취 항목이 포함되면서 보상 수준이 더 형편없어졌다"며 "마취과는 수가를 발생시키는 과가 아니다 보니 충원 요청을 하기 어렵다"고 성토했다.

조 부회장은 "이 문제를 더 방치한다면 수술을 멈춰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며 "정부가 현장 의견을 수용한 정책을 실행하고, 보험료 외에 추가 재정 지원을 통한 수가 개선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