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 공포 속에 잠들지 못하는 전공의들…“선배들은 어디 있나”

계엄령 속 고립된 전공의들, "선배들은 어디 있나"
의협의 미온적 대응에 전공의들 실망과 불만
"더 이상 계엄의 공포 속에 살 수 없어" 행동 나선 전공의들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이 무산되고, 계엄 사태의 여파로 군이 수사 대상에 올랐다. 2차 계엄은 없을 것이라 하지만, 전공의들은 여전히 불안에 떨고 있다. "군대가 코앞인데 선배들은 잠들어 있다"는 탄식이 곳곳에서 들려온다.



"공포의 밤, 전공의들은 홀로 싸우고 있다"

서울아산병원을 사직한 전공의 A씨는 지난 3일을 "평생 잊을 수 없는 밤"으로 기억했다. 그는 "멍청한 정부라며 웃어넘기려 했지만, 가슴 깊은 곳에서 밀려오는 공포를 어쩔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뜬눈으로 밤을 지샌 그는 7일 국회의사당 앞 탄핵 촉구 집회에 참여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의사들도 나가자"는 글을 보고 용기를 낸 것이다.

A씨는 서울대병원 깃발 근처에서 자리를 잡고 시민들과 함께했다. 그는 "많은 인파 속에서 안심이 됐다"면서도 "의사 관련 깃발이 더 많았다면 더 큰 힘이 됐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표했다. 의협이 공식적으로 참여했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정치적 사안이라 공식 참여가 어려웠을 것"이라며 "하지만 의사들이 나왔다는 사실을 국민에게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같은 병원에서 사직한 전공의 B씨도 집회에서 기자를 만났다. 그는 "선배들은 대체 어디 있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탄핵안 투표 불성립에 분노한 그는 "대통령 직무정지가 무산된 이상 ‘처단’ 포고령은 언제든 부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우리가 죽고 나서 선배들이 장례를 치러줄 것이냐"는 격한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B씨는 대한변호사협회를 언급하며, 변협이 "회장이 직접 나서서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고 법률 지원까지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우리는 왜 가만히 있느냐는 소리를 듣는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의협의 메시지가 느리고 약하다"며 "계엄은 의사들 당사자의 문제인데, 변협보다 더 소극적으로 보인다"고 비판했다.

의협의 침묵…"전공의들은 여전히 계엄 속에 산다"

계엄 선포 이후 의협의 대응에 대해서도 비판이 이어졌다. 포고령 공표 직후 의협 대변인이 SNS에 "전공의 파업은 없다"며 계엄사령부에 경고한 내용이 게시됐고, 새벽에 회원들에게 같은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발송했다. 하지만 그 이후 의협의 추가 입장은 나오지 않았다.

충청권 대학병원 사직 전공의 C씨는 "포고령 직후 의협이 내놓은 반응 이후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점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위기 상황에 대응하려고 회장 직무대행까지 있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C씨는 "비대위의 입장 발표가 너무 늦고 약했다"고 지적하며, "이미 온 국민이 탄핵과 내란죄 처벌을 요구하는 시점이었다"고 덧붙였다.

전공의들은 "의협이 전공의들의 고립감과 공포를 헤아리지 못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A씨는 "조금만 더 신속히 입장을 내고, 강한 메시지를 전달했다면 전공의들이 덜 불안했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B씨는 "비대위가 국회 집회는 못 나와도 긴급 규탄대회라도 열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사도 국민 앞에 나서야 한다"

8일 서울대병원 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가 주최한 대학로 집회에는 전공의와 의대생 약 800명이 참여했다. 집회에 참석한 사직 전공의 D씨는 "전공의는 지난 2월부터 계속 계엄령 밑에서 살아왔다"고 말했다. 그는 "'의사 못 하게 만들겠다'는 위협에서 이제는 '죽이겠다'는 생명의 위협으로 상황이 악화됐다"고 덧붙였다.

이날 집회는 예상보다 많은 인원이 모였고, 참석자들은 대학로 일대를 행진하며 시민들에게 의사들의 입장을 알렸다. 그러나 D씨는 "이날의 행진이 안전한 만큼, 여전히 우리는 계엄 속에 있다"고 말했다. 그는 "포고령을 본 순간, 태어나 처음으로 '내가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선배들은 자유를 누리지만 전공의는 총구 앞에 서 있다"

사직 전공의 E씨는 집회 후 기자에게 "선배 의사들이 너무 실망스럽다"고 문자를 보내왔다. 그는 "교수님들이 병원에서 진료하느라 바쁜 것은 이해하지만, 전공의들은 지난 1년간 익명 뒤에 숨어야 했고, 이제는 총구 앞에 서게 됐다"고 토로했다.

E씨는 "선배들이 누리는 자유를 우리는 꿈꾸지만, 그 자유는 전공의들의 희생 위에 서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전공의들이 더 이상 계엄의 공포 속에서 고립되지 않도록 선배 의사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공의들은 여전히 계엄의 공포 속에서 홀로 싸우고 있다. 선배 의사들의 침묵과 의협의 미온적인 대응은 이들에게 큰 실망감을 주고 있다. 전공의들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며 의협의 변화와 선배들의 행동을 촉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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