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이란, 경기 전 국가 연주에 ‘침묵’... “반 정부 시위 동참”

- 아미니 사망 사건으로 이란 전역에서 반정부 시위 → 정부 강경 진압 중
- 팀 간판 스타 지지선언에 “월드컵 엔트리서 제외해라” 압력 들어오기도
- 국가 제창 안하자 이란 국영매체서는 생중계 중단하기도

카타르 월드컵에 출전 중인 이란 선수들이 21일(현지 시각) 펼쳐진 잉글랜드와 조별리그 B조 첫 경기에서 경기 시작 전 경기장에 울리는 이란 국가를 제창하지 않고 전원 어두운 표정으로 침묵을 지켰다.


▲ 출처 : 신화연합뉴스

AFP통신은 22일 카타르 알라이얀 스타디움에서 열린 이날 경기에서 이란 선수들이 국가 제창을 거부한 것을 보도하며 “이는 이란 내에서 펼쳐지고 있는 반정부 시위에 대해 지지의사를 나타내려는 의도”로 해석했다.

이란에서는 지난 9월 마흐사 아미니(22)라는 이란 여대생이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구금됐다가 살해당한 뒤 여성 인권에 대해 시작됐던 시위에 정부가 강경하게 진압하자 오히려 반정부 시위로 확대되어 이어지고 있다. 이에 이란 대표팀 에이스인 사디르 아즈문이 지지하는 의견을 내비치자 이란 축구협회와 정부 측이 케이로스 이란 대표팀 감독에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 그를 제외하라고 압력을 넣었다는 주장도 일각에서는 제기되고 있다.

이런 국내 상황 관련해 이란 국가대표팀 주장 알리레라 자한바흐시는 전날 경기 전 기자회견에서 “국가를 따라부르지 않기로 하면서 시위에 연대 표시를 하기로 했다”고 선언했다. AP통신에 따르면 이란 국영 TV는 국가 연주에 침묵하는 선수들의 얼굴이 나오자 선수들 대신 경기장 전경 등 다른 화면을 송출했다.

이란 응원단도 이날 관중석에서 페르시아어로 ‘자유’를 뜻하는 ‘아자디’ 등의 구호를 외쳤다. ‘여성, 삶, 자유’(Women Life Freedom)라는 플래카드도 내걸었다. 이란 응원단은 사망한 여대생 아미니의 나이 22세에 맞춰 잉글랜드전 전반 22분에는 일부 팬들이 아미니의 이름을 연호하기도 했다.

AP통신은 “내가 엄청난 축구 팬이지만 실제 경기장에서 관전하는 것은 오늘이 처음”이라며 “경기장에 들어올 때 눈물이 나더라”는 이란 테헤란에서 온 34세 여성 아프사니의 인터뷰를 전했다. 이란에서는 여성의 축구 경기장 입장이 자유롭지 않다.

이란 선수들 역시 이날 경기에서 두 골을 넣고도 골 세리머니를 하지 않는 등 연이어 연대 의사를 나타냈다. 그러나 대표팀을 바라보는 이란 내 여론은 엇갈리고 있다.

AP통신은 “선수들이 더 명확한 연대 의사를 밝히지 않아 실망”이라는 테헤란에서 온 35세 여성 팬 마이람의 말을 전했다. 이 매체는 “(이란 내) 다수는 이란 대표팀을 응원하는 것을 (이란 정부를 응원하는 것으로 간주해) 길에서 목숨을 잃은 이란 젊은이들에 대한 배신으로 보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란 선수들이 이번 대회를 앞두고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과 만난 데 대한 반감도 거세다. 이란 관중석에서는 선수들에 대한 야유와 비난 소리가 터져나오기도 했다. 이란은 결국 잉글랜드에 2-6으로 패배했다.

그러자 카를로스 케이로스 이란 축구대표팀 감독은 경기 후 팬들을 향해 “왜 여기까지 와서 우리에게 야유하나”라며 “우리는 그런 팬들은 필요 없다. 그럴 거라면 집에 있는 게 낫다”고 불만을 쏟아냈다. 영국 메트로에 따르면 케이로즈 감독은 “선수들이 처한 상황은 최고의 환경이 아니다. 헌신과 집중 측면에서 이런 문제에 영향을 받고 있다”며 비난을 보낸 팬들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는 “선수 역시 사람”이라며 “나는 선수들을 오랫동안 알고 지냈지만 그들은 이란을 위해 뛰고, 국민을 위해 뛰고 있다. 국민들이 즐길 수 있도록 하는 하나의 꿈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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